지역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혁신도시가 탄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혁신도시 특별법의 핵심인 공공기관 이전도 대부분 끝났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일부 공공기관이 지역으로 분산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로 사람과 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면서 구도심이 쇠퇴하고, 이전한 공공기관은 지역과의 상생 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기관이 지역 내 융화돼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12일 한국일보가 지역발전위원회와 공동주최한 ‘혁신도시포럼’ 첫 번째 세션에서는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의 사회로, 이창희 진주시장, 정창무 서울대 교수,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참석해 ‘갈 길 먼 혁신도시’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혁신도시의 ‘현장’에 있는 이창희 진주시장은 “이전된 공공기관이 오히려 지방 재원으로 국가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이전 목적이 ‘지방 세수 확충’과 ‘지역 인재 채용’으로 크게 두 가지인데, 오히려 이런 기조에 역행하는 공공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한국세라믹기술원이 최근 국가사업에 최종 선정됐는데 예산 290억원 중 국비가 100억원, 진주시가 110억원을 내야 하더라”며 “지역에서 혁신도시 왜 했냐는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저작권위원회는 교육연수원을 진주에 짓는다고 하면서 시에다 땅을 제공해 달라고 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처럼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기관도 있지만 모든 공공기관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한국세라믹기술원의 경우 진주에 내려온 3년 동안 지역인재를 단 1명 채용했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지역인재 채용에 인색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지방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비율’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신규채용자 2만6,202명 중 지역인재는 3,196명으로 평균 12%에 불과했다. 최근 3년간 신규 채용자 중 지역인재를 단 한 명도 뽑지 않은 공공기관도 있었다. 공공기관들은 지역인재라는 기준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 풀이 적어 현실적으로 채용에 어려움이 많다는 입장이다.
혁신도시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혁신도시에 대한 개념과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창무 서울대 교수는 “솔직히 아직도 혁신도시가 뭔지 잘 모르겠다”며 “우선 혁신도시의 개념을 명확히 설정한 후 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법으로 강제하거나, 강력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혁신도시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생산적인 대안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혁신도시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철근 콘크리트를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도시의 산학연 협력을 위해서는 이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기헌 의원은 “지역구인 원주에 건보공단, 심평원과 같은 의료 공공기관과 연대 의과대학, 의료기기 산업 단지가 있어 산학연 클러스터를 만들고자 했을 때 전체를 이끌어가고 각 입장을 조율해 주는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에서는 해당 지자체와 공공기관을 아우르는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어 일관된 정책과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부 부처끼리도 조율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송재호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도시에는 통상 5, 6개의 정부부처가 관여해 의견 조정에 나서고 있다 보니 상호 조정이 미흡했던 점이 분명 있다”며 “혁신도시가 위치한 기초자치단체나 광역자치단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혁신도시의 실패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토론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지방세는 꾸준히 증가 추세고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김도읍 의원실의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지방세 납부현황’에 따르면 지난해엔 이전된 공공기관이 납부한 지방세가 초기(2013년)에 비해 69배나 늘었다. 빛가람혁신도시 역시 한전이 이주한 후 인구가 2014년 12월 3,895명에서 올해 7월 말 2만6,981명으로 급증했다.
송기헌 의원은 “혁신도시의 계획을 보면 아직 3단계 중 1단계”라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만큼 지역 원주민들과 이전한 공공기관이 협의해서 발전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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