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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퇴사에 무심한 사회를 원한다

입력
2017.09.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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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칼럼은 거의 3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 같다. 매 3주마다 1,800자의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부담이 되지만, 이런 시간이 아니면 또 굳이 제대로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 나름 유익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글을 짜내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퇴사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강의하고 있다. 좋은 글은 곧 좋은 경험에서 나오고, 좋은 경험은 좋은 인생에서 나온다고 말하는데, 정작 본인은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을까? 평상시 끄적거린 생각도 없고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라서 억지로 이리저리 쥐어 짜내는 중이라면, 과연 나는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글을 쓸 때마다 매번 나의 정체성을 돌아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로서 이 글을 쓰는가. 나는 누구로서 이 글이 보여지기를 원하는가. 퇴사학교 교장이니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직장인의 행복한 일과 조직문화에 대해 논해야 할까. 정작 나 자신이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가? 우리 팀은? 퇴사학교에서 행복한 일을 추구한다는데, 정작 우리 팀원들은 행복한가? 이런 부담스러운 주제들에 자신이 없다면, 거시적인 트랜드를 다뤄볼까. 요즘 퇴사가 유행이라는데 너도 퇴사 나도 퇴사, 30대의 퇴사, 50대의 퇴사, 대기업의 퇴사, 스타트업 퇴사, 퇴사 후 창업, 퇴사 후 여행, 퇴사 후 입사.

무엇이든 그럴싸한 아젠다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새 나도 모르는 것들을 아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만든다. 그렇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그 동안 나도 잘 모르는 퇴사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말들을 해 왔는지도 모른다.

퇴사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단어일 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퇴사라는 단어에 주목하는가?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직장인에게 퇴사는 판타지이다. 내가 할 수 없으니 간접 경험하는 것. 언론 미디어에서도 그런 측면을 부각한다. 퇴사 후 창업하고 도전해서 행복해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퇴사가 아니다. 그냥 자신만의 업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다들 고군분투하며 다양하게 살고 있는 것 그뿐이다. 그것을 마치 퇴사를 감행했으니 용기 있고 독특하며 남들과 다르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이 사회의 대부분은 퇴사와는 상관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모든 세대(사람)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 tvN 알쓸신잡’

와 퇴사하고 창업하니 대단해요. 와 퇴사 안하고 회사를 잘 다니니 대단해요. 와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 여기까지 버텨 왔으니 모두들 대단해요.

퇴사를 한 사람도 그들만의 궤적이 있고 회사를 잘 다니는 사람도 그들만의 짐을 지고 있다. 누가 더 무겁고 가볍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십자가를 찾아가는 것.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징징거리지 말고, 내게 맞는 옷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입고 걷고 뛰고 눕고 그렇게 살아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

나는 사회가 그렇게 좀 더 퇴사에 무심해졌으면 좋겠다.

“나 입사했어.” “축하해.”/ “나 퇴사했어.” “축하해.”/ “나 휴학했어.” “축하해.”/ “나 그냥 아무것도 안하려고.” “축하해.”

취업, 창업, 퇴사, 이직, 휴직, 여행, 백수(그냥 쉼) 그 무엇이든지 각자의 시간들만의 가치가 있다. 취업이 우월하고 백수는 열등하다는 생각 따윈 버려야 한다. 내게 퇴사 후 1년이라는 백수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내게 맞는 옷을 알지 못하고 징징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창업하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창업은 할 만하다고 쉽게 말했을 것이다.

그냥 그뿐이다. 각자에 맞는 옷을 찾고 갈아입어 보는 것. 자, 이제 옷장을 열어보자.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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