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자연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에도 갑작스러운 폭우가 닥쳐 북서부 해안 도시에서 7명이 숨졌다.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의 위협에도 피해를 최소화한 미국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폭우만으로 상당한 피해가 발생해 정부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10일 오전 북부와 중부 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토스카나주 리보르노에서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미국의 경우 역대급 위력으로 꼽힌 허리케인 어마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3명에 그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재난 규모에 비해 피해는 허리케인급으로 커 부실한 도시 인프라와 미흡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티레니아 해에 접해 있는 항구도시 리보르노에는 이날 자정부터 단 수시간 동안 약 400㎜에 달하는 비가 쏟아져 도시 전체가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며 거대한 강으로 변했다. 이에 시내 주택가의 한 아파트 지하층에 사는 일가족 4명이 집안에 들이닥친 물에 익사했다. 희생자는 4세 소년과 그의 부모와 할아버지다. 일가족 가운데 3세 여아는 같은 아파트 1층에 사는 할아버지가 가까스로 구조해 홀로 목숨을 건졌다. 손녀를 대피시킨 할아버지는 나머지 가족들을 구하러 집으로 들어갔다가 빠져 나오지 못했다.
나머지 3명은 고지대에서 발생한 산사태 등에 희생됐다. 또 다른 1명은 아직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리보르노 시 당국은 전했다.
인구 17만명이 거주하는 리보르노는 나폴레옹의 유배지였던 엘바 섬과 사르데냐 섬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필리포 노가린 리보르노 시장은 “도시가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며 중앙 정부가 이번 폭우의 위험 정도를 과소 평가한 탓에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보르노에 오렌지색 경보 대신에 최고 등급인 적색 경보가 발령됐다면 희생자들이 미리 대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탈리아 언론도 미국의 경우 어마 상륙에 앞서 플로리다 등지에서 무려 주민 650만명을 대피시키는 등 선제적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것에 주목하며, 당국의 미흡한 폭우 대처와 배수 시설의 미비 등으로 호우에 순식간에 마비돼 버리는 열악한 이탈리아 도시 인프라를 비판하고 있다.
수도 로마에서도 이날 오전 내린 집중 호우로 저지대가 침수돼 도로 곳곳의 통행이 통제되고, 일부 지하철 역이 폐쇄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도심 상당 지역이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어 시 당국의 호우 대처 능력에 비난이 일자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한꺼번에 수t의 비가 쏟아진 이번 물폭탄은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반박하면서도 “로마의 전체 하수도 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탈리아에는 11일에는 남부를 중심으로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며 나폴리 인근 도시 살레르노가 범람하고, 나폴리 동쪽의 아벨리노에는 산사태가 나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 카타니아도 강풍을 동반한 호우로 도심이 침수되고, 나무가 쓰러져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베수비오 화산 주변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나폴리와 로마를 잇는 기차는 최대 4시간 가량 지연되는가 하면, 이탈리아 반도 남단 레지오 칼라브리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산사태로 폐쇄되는 등 교통 통제도 잇따랐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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