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3일 서울 여의도동 KBS본관 출입기자실에는 공문이 하나 붙었다. ‘출입기자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이 공문의 내용은 이랬다. “홍보팀의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부득이 보도본부(신관 3~4층)을 비롯한 모든 사무실 출입시에는 홍보팀의 협조를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사무실 출입시에는 카메라 휴대는 불가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체는 정중했으나 담긴 뜻은 불쾌했다.
4개월 뒤 2009년 1월 홍보실과 출입기자실은 본관 밖으로 내몰렸다. 신관 옆 KBS노동조합(1노조)이 있는 자료동으로 이전했고, 본관과 신관을 드나들 수 있었던 기자 출입증도 전산시스템으로 차단했다. 당시 KBS 출입기자들(29개 매체 31명)은 ‘국민의 방송이 국민의 알 권리를 가로 막는가’라는 성명서까지 내며 항의했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었기에 언론의 감시는 당연했다. 그러나 KBS는 “KBS는 중요 방송시설이 많기 때문”이라며 옹색한 변명을 했다. 출입기자는 KBS가 요구하는 신원 정보를 제출해 최대 몇 주에 걸쳐 ‘검증’을 받아 출입증을 발급받았다.
당시 KBS는 대형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정연주 KBS 사장이 해임되고 곧바로 이병순 사장이 부임했다. KBS 분위기는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신호탄이 KBS 출입기자들에 대한 언론 통제였다.
이병순 사장은 ‘시사투나잇’ 등 정부 비판 프로그램을 모조리 폐지했고, 출입기자들의 KBS 비판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홍보실에 공문이 붙던 전날에도 “보복성 인사”에 항의하는 KBS 보도본부 기자들을 취재하던 출입기자들을 몹시 불편해 했다. 특히 고대영 당시 KBS 보도총괄팀장(현 KBS 사장)은 시위를 벌이는 자사 기자들을 취재하던 출입기자들에게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김인규, 조대현, 길환영 등 친정부 성향 인사가 잇달아 KBS사장을 역임하면서 KBS기자실은 신관 1층 커피숍 옆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출입증은 사라졌다. 공영방송이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며 공영방송이길 포기한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 KBS는 기자실을 아예 없앴다. 지난 5월 KBS는 출입기자들에게 기자실을 잠정 폐쇄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공간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기자실 자리에는 얼마 전 빵집이 들어섰다.. KBS의 기자실 마련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 현재 KBS1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조합원 3,800여명이 총파업 중인데 기자실이 무슨 대수일까. 제 식구들의 목소리도 듣기 싫어하는 고대영 사장 체제가 외부 비판까지 귀담아 들을 리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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