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 생존배낭’ 저자 중 4명
경주 지진 1년 만에 한자리 모여
“언론도 재난 속보 신경 써 주길”
경북 경주 지진 때 겪은 일을 지난 5월 책으로 낸 ‘현관 앞 생존배낭’ 저자 16명 중 4명이 경주 지진 후 1년 만인 지난 9일 한 자리에 모였다. 출판을 기획한 박찬석(44)씨와 박경애(45), 김지혜(37)씨는 함께 글을 쓴 일본인 아라키 준(52)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앉아 지진 이후 바뀐 삶을 이야기했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어 1995년 한국에 건너온 아라키씨는 2011년부터 경주에 거주하며 국립경주박물관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카레가게 ‘아라키’는 경주의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박씨 등은 보다 생생한 지진에 대한 경험담을 듣기 위해 아라키씨를 필진으로 참여시켰다.
이들은 서로 “저번 여진을 느꼈나”는 말로 안부를 물었다. 경주에는 지난해 9월 12일 지진 이후 633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경주 지진 후 이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박찬석씨는 이사를 했다. 지진 이전에도 단독주택에 살았지만 이후 고속도로 진입로와 가까운 동네로 옮겼다.
박경애씨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석면가루를 없애는데 팔을 걷었다. 경주지진 후 환경단체와 민주당 서형수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영남지역 학교 8곳의 먼지를 채취한 조사한 결과, 4개 학교에서 백석면이 검출돼 큰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경주시와 행정안전부 등에 수없이 대책을 요구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이 있는 김지혜씨는 학교에 자주 전화하게 됐다. 김씨는 “남편이 말리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지진이 날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아라키씨는 행정당국에 불신이 생겼다. 그는 “경주시의 대책회의에 갔다가 관광객 감소를 우려해 경주 지진이라는 말 대신 ‘동해안 지진’이나 ‘9ㆍ12 지진’이라 표현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원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경애씨는 “’집이 무너질까’하는 걱정보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 때처럼 원전 사고가 더 걱정된다”며 “피폭 후 1시간 이내 요오드를 먹어야 한다는데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무거운 대화가 오가던 중 아라키씨가 “지진이 나고 얼마 뒤 경주 근처도 가기 두려워하던 한국 사람들이 일본 여행은 많이 가 그것도 이상하더라”고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김지혜씨는 “경주 지진 후 한 달 뒤 일본에 출장을 갔는데 더 안심이 됐다”며 “지진보다 지진이 나도 여전히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 같은 걱정이 두려움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례 없는 큰 지진에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사회 안전망을 비판했다. 박경애씨는 “최근 여러 매체와 인터뷰했는데 자극적인 내용만 관심 갖더라”며 “과연 언론들은 지진 후 재난 상황을 발 빠르게 알리는 시스템을 갖췄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찬석씨는 “다른 도시로 이사하지 않은 건 원전과 방폐장이 있을 정도로 가장 안전하다던 경주에서 지진이 난 걸 보고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실제 강원 전라 충청도도 발생했다”며 “정부가 경주지진이라 해 경주의 일로만 여기거나 덮기보다 지금부터 공론화하는 게 우선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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