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의외의 인물이 1위에 올라 깜짝 화제가 됐다. 의류 브랜드 ‘자라’(ZARA)로 유명한 스페인 업체 ‘인디텍스’ 그룹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81)가 그 주인공. 인디텍스 지분 59.29%를 보유한 그는 당시 자산 규모 795억달러(약 90조원)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785억달러),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ㆍ676억달러),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CEO(674억달러)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꿰찼다. 지분 가치 하락으로 최근 순위가 4위로 내려 앉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소매상이자 유럽 최고 부자다.
그가 전 부인 로살리아 메라와 함께 1975년 만든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자라는 현재 스웨덴 H&M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SPA 브랜드다. 자라는 현재 93개국에 약 2,200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그 중 안방인 스페인 매장이 430여개로 가장 많다. 우리나라에는 2008년 처음으로 매장을 열었다. 지난 5월 기준 자라의 브랜드 가치는 113억달러(약 112조8,00억원)로, 종합 순위에서는 51위, 의류업체 중에는 나이키 루이뷔통 등에 이어 6위다.
자라는 보통의 의류 업체가 최장 6개월에 한 번 새 제품을 내놓는 것과 달리 일주일에 두 번씩 신제품을 내놓는다.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전 세계 매장에 뿌리기까지는 최소 14일, 평균 20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모든 상품은 제조된 지 48시간 안에 매장에 진열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렇게 자라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매년 4억4,000개에 이른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의 비결은 디자인부터 제조, 유통 등 전 과정을 직접 챙겨 비용과 생산 기간을 대폭 줄인 데 있다. 자라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여전히 전 제품의 약 60%를 스페인과 인근 국가에서 생산한다. 축구장 90개 크기의 초대형 물류기지도 스페인에 두고 있다. 한 곳에서 물건을 빠르게 만들어낸 다음 전 세계로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앤 크리츠로 소시에테 제네랄 연구원은 “자라의 제품은 다른 의류업체들이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세상은 자라에 ‘패스트 패션’(또는 인스턴트 패션)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처럼 뚝딱 완성되고, 순식간에 판매된다는 뜻이다. 오르테가는 이런 문화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일터에 뛰어들어야 했던 흙수저 소년
오르테가는 1936년 스페인 레온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청 직원이었다. 오르테가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약속 어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성향은 시간 엄수를 매우 중시하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한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오르테가는 13세가 되던 해 중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이듬해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코루냐에서 그는 ‘갈라’라는 이름의 셔츠 전문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오르테가는 훗날 자라 성공의 초석이 될 아이디어를 얻는다. 당시 갈라는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옷을 파는 작은 가게였는데도 원단을 원단 생산업자에게 직접 사지 않고 중개상을 거치는 등 복잡한 생산ㆍ유통 방식을 갖고 있었다. 오르테가는 이런 방식을 단순화하면 더 빠르고 싸게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2년 오르테가는 부인 메라(당시 약혼녀)와 함께 여성용 목욕가운을 만들어 파는 옷가게 ‘고아 콘펙시오네스’를 열었다. 고아는 그의 이름(Amancio Ortega Gaona)에서 앞글자만 따 뒤집어놓은 말이고, 콘펙시오네스는 스페인어로 의류를 뜻한다. 옷가게 주인이 된 오르테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원단업자에게 직접 원단을 구입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 외에도 불필요한 중간 과정을 찾아 걷어냈고, 이는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만들어내는 토대가 됐다. 다양한 신상품이 쏟아지면서 그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유행하는 옷을 합리적 가격에
첫 가게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본 오르테가는 1975년 항구 도시인 라코루냐에 자라 1호점을 세웠다. 자라(ZARA)라는 이름은 그가 좋아하는 고전 영화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서 직접 따왔다. 원래 그는 매장 간판을 ‘조르바’로 달았는데,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술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글자를 재배치해 지금과 같은 이름을 만들었다.
어부가 많은 곳이어서였을까, 오르테가는 ‘옷 장사는 생선장사와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갓 잡은 생선처럼 옷도 신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유행이 지난 옷은 전날 잡은 생선과 같다고 여겼다. 그는 “유행은 만드는 게 아니라 따라가는 것이다”라고 늘 강조했다. 유행을 무리하게 예측하는 대신 순발력 있게 반영해 옷을 만드는 자라의 사업 모델은 이런 생각에서 탄생했다.
오르테가가 고수한 철학은 또 하나 있다. 고객이 ‘살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품은 빛나지만 너무 비싸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는 “다른 곳에서 100유로에 사야 하는 실크나 캐시미어 의류를 자라에서 30유로에 살 수 있다면 틀림없이 기쁘지 않겠느냐”라고 묻는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자라는 지금도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면서 자라는 성공적으로 스페인 시장에 안착했다. 1985년 오르테가는 불어나는 자라 매장과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인디텍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인디텍스는 1988년 인근 국가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자라를 해외로 가져나갔다. 1990년에는 엄마를 따라 매장에 들르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어린이용 의류만 판매하는 ‘자라 키즈’를 선보였고, 1991년부터는 풀앤베어 같은 브랜드를 새로 내놓거나 인수합병(M&A)했다. 현재 인디텍스 그룹 산하에는 자라뿐 아니라 마시모 두띠(Massimo Dutti), 버쉬카(Bershka), 오이소(Oysho) 등 8개 브랜드가 있다. 인디텍스가 93개국에서 운영하는 매장 수는 2,200여개의 자라 매장을 포함해 총 7,200개에 이른다.
“난 평범한 사람…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인디텍스 설립 때부터 회장을 맡았던 오르테가는 2011년 부회장이자 CEO였던 파블로 이슬라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을 떠났다. 그의 나이 75세 됐을 때다.
현재 오르테가는 둘째 부인인 플로라 페레즈 마르코트(2001년 결혼)과 함께 첫 번째 자라 매장을 열었던 라코루냐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은퇴한 지금도 출근을 거의 거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항상 같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회사에 나와 책상에 걸터앉은 채 직원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여가 시간은 자신이 운영하는 승마장에서 말을 타며 보낸다. 마르코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 마르타 오르테가 페레즈가 이슬라 회장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오르테가는 세계 각국에 비싼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 거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근대화의 상징이자 마드리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43층짜리 ‘토레 피카소’를 2011년 5억3,600만달러(약 6,054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고급 호텔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에픽 레지던스 앤 호텔’도 그의 소유다. 서울에는 자라 매장이 들어서 있는 명동 엠플라자(2015년 4,300억원에 매입)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신사동 H&M 건물도 325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르테가의 관심이 부를 축적하는 데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2012년 로마 가톨릭 구호 단체(카리타스 인터네셔날리스)에 2,000만유로(270억원)를 기부하는 등 통 큰 자선가로도 유명하다. 오르테가의 관심은 특히 건강에 있는 듯하다. 그는 2015년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 의료 발전을 위해 1,700만유로(230억원)를 쾌척했고, 지난해에는 암의 진단과 치료 등에 써달라는 뜻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선 재단을 통해 3억2,000만유로(4,325억원)를 기부했다.
이처럼 유명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을 지니고 있지만 오르테가는 사실 빌 게이츠 등 다른 부호에 비해 낯선 편이다. 이는 자라의 스페인 증시 상장을 앞둔 2001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했을 만큼 외부 노출을 꺼리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1999년에야 오르테가의 얼굴 사진이 유출됐고, 지금껏 그와 인터뷰한 기자는 3명뿐이다. 이슬라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자리에도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오르테가가 고집스러울 정도로 은둔형 삶을 추구하는 건 그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 중산층 사고방식을 지니며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신의 엄청난 성공에 대해서도 오르테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력과 헌신이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일 뿐이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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