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대 사업 공들인 소형업체
대형사 끌어들여 낙찰 받았지만
최종 계약에선 이름 쏙 빠져
합의 위반 승소 가능성 있어도
“긴긴 소송 버틸 수 있을지” 눈물
“도저히 성한 정신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D건설 대표 유모(48)씨는 최근 화병에 공황 장애까지 얻어 몸져누웠다. “반 년 넘게 고생해 따낸 공사를 하루아침에 뺏겼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자책에 몸이 버텨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올 4월 D건설은 400억원 규모의 유명 보일러 회사 연구센터 공사 계약 입찰에 참여했다. 매출액 50억원 정도에 불과한 소형 건설업체가 홀로 떠 앉기엔 부담스런 규모였지만 몸집이 좀 더 큰 업체를 끌어들여 공동 입찰(컨소시엄)하면 공사를 따낼 자신이 있었다. 유 대표는 “다행히 시공 능력 100위권이면서 매출액 2,000억원 규모의 1군 건설사인 Y사와 함께하기로 얘기가 됐다”고 했다. 컨소시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컨소시엄 구성 2주 만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통보를 받았고, 최종 계약 직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최종 계약 단계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계약서에 D건설은 쏙 빠지고 Y사만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 유 대표는 “시공 지분을 51(Y사)대 49로 나누기로 하고 입찰에 참여했다”며 “우리가 계약에서 빠진다는 아무런 설명도 고지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 사항을 이행하라는 내용증명을 Y사에 보냈지만, “계약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급기야 주변 조언에 따라 민ㆍ형사상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D건설 측 변호사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종 계약을 하기로 한 합의를 어긴 것은 민사상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자체가 고통이다. 유 대표는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걱정이 태산”이라며 “회사가 오늘내일 하는데 지난한 소송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고작 5억원인 자본금이 직원 월급으로 나가고 있어 부도나 마찬가지인 ‘자본금 잠식’ 상태”라며 “이번 공사를 진행했으면 순이익 20억원 가량이 들어와 향후 3년 정도는 새로운 공사를 위한 영업을 할 수 있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울먹였다.
Y사 측은 “D건설에서 공을 들인 것도 맞고, 컨소시엄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도 맞다”고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해당 공사는 적자를 떠안고 가야 하는 구조라 시공 능력이 있는 우리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공사를 발주한 보일러 회사 측은 “우리도 뒤늦게 D건설이 배제된 걸 알고 Y사에게 D건설을 참여시켜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D건설처럼 억울한 일을 겪는 중소 건설회사들이 종종 있다고 얘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공 능력이 100위권 정도되는 회사들이 소형 업체들이 힘들게 영업해 따낸 공사에 끼어들어 뺏어가는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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