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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올바른 역사라고 해서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거

입력
2017.09.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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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1월 '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고 있다. 마거릿 맥밀란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대개 그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역사"라고 비판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1월 '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고 있다. 마거릿 맥밀란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대개 그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역사"라고 비판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2007년. 마침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거머쥐게 된 러시아의 푸틴은 역사 선생들을 모아놓고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러시아의 과거에 문제가 있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훨씬 적다. 스탈린은 독재자였지만 러시아를 적들로부터 구해야 할 시기에 꼭 필요했다. 미국이 시작한 냉전이라는 거대한 대결 속에서 민주화는 선택사항에 해당되지 않았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는 식의 거창한 얘기를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쉴새 없이 주워 삼키지만, 정작 역사의 가장 큰 재미는 이런 웃음 터지는 순간을 매번 만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조금 더 해보자. 프랑스는 2005년 생존해있는 마지막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찾아내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애국적 이벤트다. 이 계획은 뜻밖의 장벽에 가로막혔는데, 그 장벽은 다름 아닌 생존한 참전용사 라자르 퐁티셀리의 이 발언이었다. “만약 내가 마지막 생존자로 밝혀진다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 그것은 나보다 먼저 죽어서 아무 명예도 얻지 못한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이런 건 또 어떤가. 2차 세계대전 뒤 영국은 공식 전쟁사 발간을 추진하는데, 이때 공군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난다. 알려졌다시피 2차 대전 중 영국 공군은 공군 내부에서도 논란이 될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잔혹하게 독일을 폭격했다. 이 잔혹한 폭격에 대한 공군 내 논란이 고스란히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군의 주장이었다. 그때 내각의 민정수석 노먼 브룩은 “역사는 기록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공군의 요구를 일축했다.

캐나다 출신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의 ‘역사사용설명서’(공존)는 가벼운 에세이풍 서술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역사 오남용 실태를 고발하는 책이다. 너무너무 통쾌한 얘기들이 많으니 우리 또한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저자 주장의 핵심은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역사공부에서 얻을 것은 어쩌면 “겸손, 회의, 자기 각성”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알토란 같은 조언이 많다. ‘~의 문화사’ 같은 유행을 두고선 “사회사와 문화연구에 몰두하느라 정치사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역사를 “정의와 불의의 도덕극으로 몰아가는 것”도 피하라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이런 대목이다. 역사는 무조건 밝고 희망찬 우리의 미래를 노래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전문적인 역사학이 필요한가. 특히나 우리 역사학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연구에 공금이 쓰이는 시대에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물리학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일갈을 소개해뒀다.

글쎄, 이것도 우리에겐 좀 과분하다 싶다. 이휘소를 굳이 핵무기 비밀 개발자로 추어올리고, 황우석 신드롬에 열광했던 게 바로 우리 아니던가. 과학마저도 그저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는 이들에게 환호하는 우리다 보니, 엄밀함에서 과학만 못한 역사 따위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어둡고 씁쓸한 부분까지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의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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