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보고에 늑장 대응
등 떠밀려서 하는 유해성 조사
제품명 공개 놓고도 오락가락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는 한참 동안 물러나 있다가, 비난이 폭주하자 떠밀려서 나서고, 외부 시험결과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최근 생리대 논란에 대처해온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모습이다.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을 두고 소비자가 혼란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식약처가 사안을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고비마다 뒷북, 부실 대응을 한 데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문제 방치
생리대의 유해성 문제는 2014년 미국의 여성환경단체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가 피앤지(P&G) 생리대 등에서 발암물질이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촉발됐다. 국내에서 먼저 나선 것은 식약처가 아니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10월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해, 10개 일회용 생리대 모두에서 발암물질을 포함한 휘발성유기화합물 방출이 확인됐다는 시험결과를 3월 21일 발표했다. 이 내용이 보도(본보 3월 22일자 11면)되자, 소비자만 들끓었을 뿐 식약처는 방관했다. 발표 현장에는 식약처 관계자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을 관리하는 나라는 없고, 시험법 역시 표준화되지 않았다”며 “생리대 유해물질 연구사업을 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또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을 둘러싼 부작용 논란은 약 1년 전부터 온라인 여성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흘러나왔고, 깨끗한나라가 먼저 나서 지난달 18일 한국소비자원에 안전성 확인 요청까지 했다.
책임 회피
5개월이 지나 생리대 논란이 본격화했지만 식약처는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만 보였다. 식약처는 엉뚱하게 휘발성유기화합물 시험은 포함되지도 않는, 지금까지 늘 해오던 ‘품질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20년 전 기준이 만들어진 ‘품질검사’는 색소, 산 및 알칼리, 포름알데히드, 흡수량, 강도 정도를 알아보는 시험이다.
이후에도 내년 10월까지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위해기준을 정하는 연구사업을 마친 후에야 위해성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깨끗한나라가 릴리안 생산을 중단하고 불안이 확산되자 지난달 25일 기존 입장을 바꿔 896개 생리대 전 품목에 대해 10여종 독성물질 검사 결정을 내렸다. 발표도 이달 말로 앞당겼다.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하라는 요구들을 묵살해 오다, 떠밀려서 나선 것이다.
이중 행태
여성환경연대의 시험대상이었던 생리대 제품명을 모두 공개하라는 여론의 압박에 식약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관련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지난달 30일 식약처는 “실험 결과에 상세한 시험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검증(peer-review)’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과학적 신뢰가 어렵다”고 김만구 교수의 시험을 공격했다. 한 화학과 교수는 “피어리뷰는 논문으로 출판 할 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만구 교수는 발표 내용을 토대로 논문을 이제 준비하는 단계인데, 식약처가 느닷없이 물고 늘어진 것이다. 검증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를 ‘과학적 신뢰가 어렵다’고 표현해 호도한 측면이 있다.
그러다 지난 4일 식약처는 제품명 추측이 난무하자 제조사의 동의를 얻었다며 제품명을 모두 공개했다. 그러면서 “세부 내용은 실험 연구자 측에서 설명하는 게 맞다”고 발을 뺐다. 업계 관계자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결과를 공개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며 “정말 신뢰할 수 없는 거라면 억울한 피해를 입는 업체들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 정부 부처 공무원은 “식약처 구성원들이 대부분 연구직이어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소통이 부족한 것 같다”며 “국민 불안을 잠재우려면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늘 하루만 넘겨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니 사태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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