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지만, 월드컵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가고 있다. 6년째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리아의 이야기다.
시리아 축구 대표팀은 6일(한국시간)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오마르 알 소마(28ㆍ알아흘리)의 동점골에 힘입어 2-2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다. 조 3위를 지켜낸 시리아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려냈다.
이날 시리아가 상대한 이란은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24위로 아시아 최강팀이다. FIFA랭킹이 80위에 불과하고 월드컵 본선무대 경험이 전무한 시리아에게는 힘겨운 싸움이 예고돼 있었다. 남다른 각오로 그라운드에 나선 시리아는 전반 13분 만에 타메르 모하마드(29ㆍ도파르)의 득점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리드는 길지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란이 강하게 밀어붙인 탓이었다. 거침없이 퍼붓는 공격을 버텨냈지만, 시리아는 전반 막판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어 후반 19분에는 역전까지 허용했다. 조 1위 이란을 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정규시간 90분이 지나며 시리아의 패색은 더욱 짙어져 갔다. 하지만 시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소마의 득점으로 경기를 2-2 무승부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경기를 마친 시리아는 A조에서 이란(승점 24)과 한국(승점 15)에 이어 승점 13점으로 조 3위를 지켜냈다. 이로써 B조 3위 및 북중미 팀과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시리아 대표팀의 여정이 주목 받는 이유는 시리아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시리아는 현재 6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내전으로 4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정부군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알레포에서 반군을 몰아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역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6년째 이어진 고통과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리아는 축구를 통해 아픈 현실을 극복해내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며 지난 5년간 국가대표를 보이콧해왔던 피라스 알 카티브(34ㆍ쿠웨이트SC) 는 갈등 봉합을 위해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 3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집에 앉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며 “우리는 우리의 가족, 국가, 친구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결의를 밝혔다.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시리아 축구팬 수 천명이 수도 다마스쿠스 우마야드 광장에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자 시민들은 얼싸안고 국기를 흔들며 기뻐했다고 한다. 시리아 출신의 한 기자는 이 장면에 “오랜 전쟁 끝에 행복한 순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시리아 축구대표팀이 끝내 기적을 이뤄내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희수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