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10억원을 훌쩍 웃돈다는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아파트 경비원들은 화장실이 부엌이고, 또 침실이라고 한다. 쪽잠을 청할 때는 변기 옆에 머리를 대고 누워야 하고, 끼니를 때울 때도 악취와 싸워야 한다. 교도소 독방도 이보다는 나을 거라는 경비원의 한탄은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다른 아파트라고 해서 사정이 대단히 나은 건 아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에서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한 달만 하고 나면, 혈기왕성한 청년들조차도 몸에 기력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다.
주민들의 갑질은 더더욱 견디기 힘들 것이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간다며 경비실의 에어컨에 밀봉을 하고, 아파트 문을 빨리 열어주지 않는다며 폭행하고, 까마득하게 어린 나이에 반말로 항의하고…. 알려진 사례만도 헤아릴 수 없는데, 공개되지 않은 갑질 피해는 그들의 일상일 것이다.
그래도 열악한 환경과 주민들의 갑질은 꾹 참고 버티면 그만일 수도 있다. 지금 상당수 경비원들은 언제 거리로 나앉아야 할지 모르는 벼랑 끝 처지다. 관리비를 줄이겠다고 도입한 자동출입문에 하나 둘 일거리를 내주고 전국 곳곳에서 감원과 해고 위기를 맞고 있다. 어느 아파트 경비원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감축 계획으로 경비원 감원을 예고하는 안내문을 직접 엘리베이터에 붙여야 했다는 짠한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아파트 주민들인 우리는 경비원 분들을 입주자대표회의라는 기구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라는 점이다. 주민들 중에서는 사회에서도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인 이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피고용인인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사용자에, 그러니까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고 아쉬움을 호소해왔던 이들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회사의 열악한 복지 개선에는 목소리를 높여왔으면서 매일 지나치는 경비원 아저씨가 화장실을 부엌과 같이 사용하는 것은 보고도 모르는 척 하지는 않았는지. 재벌 오너들이나 회사 경영진의 갑질에는 공분을 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경비원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본 적은 없는지. 또 쉬운 해고를 조장하는 양대지침 폐기를 외치면서 관리비 절감을 위한 경비원 감축에 찬성을 하거나 묵인하지는 않았는지.
무조건 아파트 경비원들을 지켜야 한다, 그게 옳고 정의다라고 말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갑질이야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겠지만, 경비원들의 고용이나 처우 문제는 그리 간단한 사안만은 아니다. 관리비 몇 푼 아끼려고 그렇게 매정해야겠느냐는 질책이 단 돈 몇 천원이 부담스러운 어느 사용자(주민)에게는 너무 야속하게 들릴 수 있다. 만약 자동화가 경비원들의 모든 업무를 대신해 정말 경비원이 없어도 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럼에도 경비원은 계속 고용해야 한다고 언제까지 말할 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인공지능(AI)의 공습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직업이 비단 경비원만은 아닐 터인데, 언제까지 주민들의 인정에만 기대어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지는 솔직히 확신이 없다. 그렇다면 왜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은, 또 상냥한 목소리로 통화를 전화 안내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도록 방치를 해야만 했겠는가.
말하고 싶은 건, 대다수 주민들의 사용자인 기업들이 하고 있는 고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경비원 문제에 대해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동네 아파트에서 우리는, 평소 ‘악덕’이라고 몰아세웠던 사용자의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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