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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난민 구조선 ‘피닉스’, 로힝야 향해 닻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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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난민 구조선 ‘피닉스’, 로힝야 향해 닻 올렸다

입력
2017.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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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서 최초로 해상 구조 시작해

4만여명 목숨 구한 500톤급 선박

이탈리아 등 난민 수용 거부에

“지중해 출항 중단... 미얀마로”

3주 뒤 벵골만 해역 도착할 듯

“배에 올라타는 순간 이들은 온 힘을 다해 활동가들에게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무슨 일을 겪어왔고 어떻게 가족을 잃었는지 같은 것들이죠.”

2014년 8월부터 지난 3년간 최소 4만여명의 생사가 오고 간 한 배가 있다. 길이 40m에 500톤급에 불과한 선박이지만 이 배에 실린 생의 무게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다. 스무명 남짓의 민간 활동가들은 이 배로 이탈리아와 리비아를 오가며 지중해에 조난당한 난민들을 끊임없이 끌어올렸다. 가장 어리게는 생후 2일 된 갓난아기부터 최고령 92세 노인까지, 내전 중인 중동ㆍ아프리카의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난민들이 이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지중해 해역에서 최초로 난민구조 활동을 시작했던 비정부기구 이민자해안구조기지(MOAS)의 구조선 ‘피닉스(불사조)’ 얘기다.

피닉스에는 늘 비극이 넘쳐났다. 레지나 카트람보네 MOAS 공동설립자는 “올해 5월에는 내전을 견디다 못해 시리아에서 탈출한 한 변호사 부부가 생후 2개월의 딸을 안고 배에 탔다”며 “이들은 그저 지구상 잘못된 곳에서 태어났을 뿐이다”고 회상했다. 이밖에도 난민선이 전복되면서 아이를 잃어 구조되고서도 오열하다 탈진한 여성, 밀입국 중개자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형을 끝까지 끌어안고 있던 동생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살아남은 기쁨을 압도한다.

피닉스가 지중해를 수백번 오가는 3년간 난민들의 처지는 눈에 띄게 열악해졌다. 난민들은 대부분 밀입국 중개자들이 준비한 고무보트나 소형 목선(木船)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데 배마다 정원 초과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MOAS의 한 구조 활동가는 “첫 작전 때에는 조각배에 평균 120명이 타고 있었는데 3년간 점차 늘더니 최근에는 한 배당 175명까지 구조해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중해 난민의 수호신 피닉스가 4일(현지시간) 마침내 지중해 출항을 중단했다. 하지만 난민 구조는 멈추지 않는다. 피닉스가 손을 내민 난민은 다름아닌 미얀마 로힝야족이다. MOAS는 이날 성명을 통해 “중앙 지중해에서의 수색ㆍ구조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며 “피닉스는 이제 도움이 절실한 로힝야족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가 난민 수용을 적극 회피, 리비아 당국과 협조해 조난 난민들을 리비아로 돌려보내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이를 거부한 구호단체들이 줄지어 활동을 멈추고 있다. MOAS가 국경없는의사회, 세이브더칠드런 등에 이어 4번째로 구조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미얀마 정부군과 로힝야족 반군간 무장투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로힝야족 피난민 2명이 한 여성 노인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 채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에 있는 나프강을 건너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미얀마 정부군과 로힝야족 반군간 무장투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로힝야족 피난민 2명이 한 여성 노인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 채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에 있는 나프강을 건너고 있다. EPA 연합뉴스

MOAS가 다음 활동지로 미얀마를 택한 이유는 그만큼 로힝야족의 상황이 긴박해져서다. 미얀마 내 소수민족 로힝야족은 최근 정부군의 반군단체 소탕작전이 전방위로 확대됨에 따라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대거 피난하고 있다. 이곳 역시 지중해 난민과 마찬가지로 부실한 난민선이 뒤집히면서 어린이와 여성 등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미얀마를 탈출하는 로힝야족 주민의 수가 12만3,000명에 달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파키스탄의 교육운동가이자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20)는 3일 트위터를 통해 “로힝야족 뉴스를 볼 때마다 그들이 미얀마에서 겪었을 고난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유사프자이는 또한 자신처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도 로힝야족 유혈사태를 방관하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을 향해 “나와 같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피닉스는 약 3주내 벵골만의 미얀마 및 방글라데시 해역에 도착할 전망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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