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고 아픈 생명들에게 힘든 계절인 여름이 가고 있다. 의외로 매년 여름에는 겨울만큼이나 반려동물과의 이별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가는 생명의 끈을 잡고 있었던 아이들이 끈을 놓아버리는 계절. 장기 입원해서 치료중인 자녀를 둔 친구가 여름이 두렵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지인의 골든리트리버도 이번 여름에 떠났다. 열 일곱 살. 여러 질환에도 큰 고통 없이 장수해서 기적의 아이라고 불렀다. 종 특유의 친화력에 더해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서 아이가 기운이 좀 떨어지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그러면 예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운을 차리고는 했다. 그런데 올 여름에 급격히 나빠져 안락사를 선택했다. 그 동안 강철처럼 단단하게 아이 곁을 지켰던 엄마. 지인은 안락사가 최선이었음을 알면서도 복잡한 마음을 떨치기 어려워했다.
안락사는 반려인으로 살면서 내려야 하는 가장 어려운 판단이다. 외국의 애니멀커뮤니케이터들은 상담의 30%는 안락사 문의라고 한다. 반려인이 안락사 문의를 했다는 건 이미 안락사가 필요함을 느낀 것이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게도 종종 반려인들이 문의를 해온다. 아이의 상태를 설명한 뒤 나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 이미 답은 질문하는 사람 마음속에 있다.
“아이가 분명 알려줄 거예요.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마세요.”
그 신호는 어쩌면 스스로 보내는 것일 수 있다. 이제 보내도 되겠다 싶을 때 아이들은 떠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아이들이 사람의 결정을 기다려 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신호를 받고 안락사로 아이를 보내도 여전히 미안함과 죄책감은 남는다. 그래서 끝까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람 가족을 떠나 보낼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가장 많은 안락사가 이루어진다. 내가 지켜보기 힘들어서, 내 몸이 힘들어서 보내는 게 아닌가를 자꾸 질문해야 한다.
안락사는 오래 곁에 함께 한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책임이고, 사랑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고 아이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마지막 교훈이다. 안락사라는 단어는 ‘훌륭한 죽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하루 이틀 생명을 연장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락사는 자연적이지 않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누구나 저마다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다르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중에서 ‘노찬성과 에반’은 고속도로 휴게실에 버려진 늙은 개 에반을 할머니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키우는 어린 소년 노찬성의 이야기이다. 사고로 아빠를 잃은 찬성은 에반을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천천히 아빠를 떠나 보낸다. 가난한 집의 경제력 없는 소년이 늙은 개를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꾸 뒷다리를 핥는 에반을 병원에 데려갔는데 암일 확률이 높으니 진단을 해보자는 수의사에게 찬성은 말한다. 3만 원, 아니 2만5,000원어치만 검사해 달라고.
수술하면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락사도 고민해보라고 수의사는 조언한다. 찬성은 에반에게 묻는다.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한데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건 얼마나 아픈 거야?” 그리고 에반의 안락사 비용 10만원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후 10만원을 벌었지만 핸드폰 케이스를 사는 등 야금야금 돈을 까먹는 과정은 찬성이 의도적으로 에반과의 이별을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 찬성은 에반에게 너무 아프면 꼭 말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미 들을 마음은 없다.
15년 전 세 살 밖에 안 된 반려견 해리가 온갖 치료에도 발작을 하며 힘들어 할 때 나는 보내주지 못했다. 이후 노견을 키울 때는 고통뿐인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스스로 안락사 기준도 마련했었는데 해리 때는 안락사에 대해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고통스럽게 해리를 보내고서야 많은 후회를 했다. 나는 해리에게 너무 많이 부족한 가족이었다. 그때 이렇게 말하고 보내줬어야 했다.
“해리야, 너무 힘들면 이제 떠나도 돼. 이제 그만 너를 보내줄게.”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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