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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 잡는 대통령, 달래는 비서실장, 눈치 없는 국방장관

입력
2017.09.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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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돈을 쓰고…” 문 대통령 발언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은꼴

송 장관 청와대 첫 보고서 달랑 3장

대통령 면전에서 지휘관 행세 ‘눈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국방부 핵심정책 토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국방부 핵심정책 토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많은 돈을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왜 북한에 전력이 뒤지나”(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지난달 28일 국방부 업무보고 현장. 문 대통령이 작심한 듯 회초리를 들며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우리 군의 수뇌부를 질타했다.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도 독자적 작전능력은커녕 북한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겼다. 업무보고 이틀 전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을 일본 열도 위로 발사하는 대형도발을 감행한 탓도 있지만, 문 대통령은 주말 내내 우리 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악하며 ‘열공’을 했다고 한다.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에 참석해 “북한보다 10배 넘게 국방비를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무유기”라며 “미국 뒤에 숨어 형님 빽만 믿겠다는 게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인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자기 군대 작전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다”라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군 소식통은 1일 “우리 군이 거의 매국노 수준으로 몰리며 완전히 뒤집어졌던 11년 전과 대통령의 발언이 너무나 비슷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군기’를 잡는 사이, 반대로 임종석 비서실장은 어르고 달랬다고 한다.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하면서 상대방을 흔드는 ‘굿 캅, 배드 캅(착한 경찰, 나쁜 경찰)’ 방식이다. 문 대통령이 방산비리 전수조사를 지시하며 우리 군을 몰아세우자, 임 실장은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가 무죄 판결로 끝난 사례가 여럿 있다”며 “과거 정권이 정치적 이유에서 방산비리를 이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에게 혼나면서 풀이 죽어 있는 군 관계자들을 배려한 셈이다.

이런 와중에도 송 장관은 분위기 파악을 못해 눈총을 샀다. 송 장관이 업무보고에 앞서 청와대에 처음 올린 보고서가 고작 3장에 불과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단단히 준비하며 잔뜩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기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는 후문이다.

업무보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송 장관의 행동은 구설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시사항을 전달하자, 송 장관은 뒤에 배석한 군 관계자들에게 다시 지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면전에서 지휘관 행세를 한 셈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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