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이 정도 크기 밖에 안되나요?”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에 전시되어 있는 황제펭귄 박제를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TV속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모습은 남극 얼음 위 펭귄들뿐이라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펭귄들 가운데 가장 커서 ‘황제’라는 칭호까지 붙은 황제펭귄도 몸 길이는 120㎝ 정도에 몸무게는 20, 30㎏ 밖에 나가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7세 어린이의 평균치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펭귄의 잠수 실력을 얕잡아 보곤 한다. 물론 나도 펭귄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기 전엔 마찬가지였다. 펭귄이 한때 하늘을 날았던 조류의 후손임을 떠올리면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참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제주 해녀들이 20m 깊이까지 잠수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펭귄은 기껏해야 30, 40m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했다.
1967년 겨울, 미국 생리학자 제리 쿠이먼 박사는 남극 황제펭귄의 잠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수심기록계를 개발했다. 방수가 되는 원통 안에서 수압을 종이에 잉크로 찍어 기록하는 간단한 기계를 펭귄의 등에 달아 잠수 깊이를 측정했다. 기록계를 부착한 스물 한 마리 중 불과 여섯 마리에서 데이터를 획득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황제펭귄이 최대 265m 깊이까지 잠수하면서 18분 가량 숨을 참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평균 수영 속도는 시속 약 5.4~9.6㎞였다.
지난 5월 쿠이먼 박사가 우리나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연구결과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잘 믿지 못했다”며 “심지어 생물학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펭귄이 그렇게 잠수를 잘 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실은 나도 그 정도로 깊게 잠수할 줄 몰랐다”고도 했다.
1993년 그의 추가 연구에 따르면, 황제펭귄의 최대 잠수 깊이는 처음 알게 된 수심보다도 두 배 정도 깊은 534m로 기록됐다.
펭귄의 잠수 비결은 혈액 속 산소 조절에 있다. 잠수를 오래 하려면 제한된 산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순환시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황제펭귄은 18분 동안 물 속에 머물기 위해 심장 박동률을 분당 3회 수준으로 낮춘다. 그리고 근육으로 공급되는 혈액을 막은 채 일종의 무산소 호흡 상태로 수영을 한다. 이렇게 하면 오랜 시간 잠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산소 호흡을 하는 동안 근육에 쌓인 젖산(lactic acid) 농도를 낮춰야 한다. 때문에 수면에 올라오면 심장박동을 최대 분당 256회까지 올린 채 회복 시간을 갖는다.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 있는 젠투펭귄은 몸길이 60㎝ 정도에 무게는 5~6㎏으로 황제펭귄보다 훨씬 작다. 50년 전 쿠이먼 박사가 했던 것처럼 젠투펭귄에게 수심기록계를 부착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최대 182m까지 잠수하고 6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는 것으로 측정됐다.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 수족관에 사는 젠투펭귄이 떠올랐다. 이들이 사는 수족관의 깊이는 1.2m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한번도 잠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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