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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노인과 바다(9월 1일)

입력
2017.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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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가 1952년 오늘 발표됐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가 1952년 오늘 발표됐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1952년 9월 1일 잡지 ‘라이프’에 발표됐다. 그 소설 덕인지 어쩐지는 불확실하지만 잡지는 이틀 만에 500만 부가 매진됐다고 한다. 곧 이어 출간된 책으로 그는 이듬 해 퓰리처상을 탔고, 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84일 동안 허탕만 친 멕시코만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Santiago)가 85일째 되던 날 혼자 바다에 나가 낚시로 커다란 청새치를 낚고, 사흘에 걸친 사투 끝에 간신히 배에 묶어 돌아오는 길에 청상아리 등 상어 떼에게 청새치의 살점은 다 빼앗기고 뼈만 매달고 귀항하는 이야기…,라고 해버리면 끝날 이야기를 그는 소설로 썼다. 낚시광이던 그가 쿠바에 머물며 우정을 쌓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 1897~2002)의 체험담을 모티프로 쓴 작품이라 알려져 있다. 한물간 어부가 긴 실패로 조롱을 당하던 끝에 극적인 성취를 이루지만 대중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채-소설 속에서 동료 어부들은 뼈를 상어 뼈로 오인한다- 다시 빈손으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는, 물론 다분히 극적이지만, 헤밍웨이는 특유의 덤덤하고 건조한 어조로 늙은 어부와 바다, 생명, 낚시,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의 기품을 끌어올린다. 어부에겐 돈에 대한 갈망도, 어탁(魚拓)을 뜨는 조사(釣士)의 자족도, 성취를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아예 없거나 언뜻언뜻 드러날 뿐이다.

거기에 대고 불굴의 의지나 희망 따위를 운운하는 것도 산티아고로서는 민망해 할 일이다. 그에겐 물론 5세 무렵부터 낚시를 가르친 어린 어부 마놀린(Manolin)의 신뢰와 우정이 있다. 그 우정은 내로라하는 물고기를 낚아 건재함을 과시하는 데 필요한 원조의 우정이 아니라 다만 다시 고기잡이를 함께 나가자고 약속할 수 있는 동료로서의 우정이다. 풍운아처럼 살았던 헤밍웨이에게는 그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와 푸엔테스의 우정이 그런 거였다.

헤밍웨이는 61년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의 낚싯배 ‘필라(Pilar)’와 낚시도구 일체를 푸엔테스에게 남겼다. 쿠바 권력자 피델 카스트로가 그걸 다시 징발했다고 한다. 그 배는 쿠바 아바나의 헤밍웨이 옛집이던 현 헤밍웨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헤밍웨이나 산티아고 노인이라면 무척 촌스러운 짓이라 여겼을 것 같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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