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법정에 나가 진술해야
증거로 채택되는 상황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공판에 특별검사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계없는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특검의 질의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합병은 승계 작업의 핵심 중 하나로 그룹 미래전략실이 기획한 뒤 그대로 집행된 시나리오”라며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하던 삼성 측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에 반대했다면 삼성이 합병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공판 출석은 큰 논란을 빚었다. 그는 평소 양복에 달고 있던 국무위원 배지를 뗀 채 출석하며 “한 사람의 시민자격으로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수장을 앞에 놓고 피고인 측 변호인이 적극적인 반대 신문을 진행하긴 힘들 뿐 아니라 법원 역시 현직 실세 장관의 증언에 아무래도 가중치를 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에 나갈 때 왜 고민이 없었겠느냐”며 증인 출석 논란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증인으로 나가지 않으면 특검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부분이 전혀 증거로 쓰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직접 법정에 나가 증인으로 진술해야 증거가 채택되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지난 2월 김 위원장은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 진술했다. 그리고 특검은 김 위원장의 진술을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그런데 삼성 측은 공판 과정에서 이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했다. 김 위원장은 “피고인 측이 제 진술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하는 바람에 제 진술을 재판부가 참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래서 특검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판이 진행되는 사이 그의 신분은 대학교수에서 현직 장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김 위원장은 “현직 공정위원장으로서 너무나 부담스러웠지만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위원장의 증언은 이 부회장의 뇌물죄를 1심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하는 법리 구성의 ‘주춧돌’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부장 김진동)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승마와 경영권 승계 지원을 서로 거래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우호적 입장을 취하거나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이 부회장의 포괄적 현안인 ‘승계 작업’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은 피고인(이 부회장)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원활한 진행을 저해하는 또는 유리한 법률안의 입법에 관여하거나, 금융ㆍ시장감독 당국에 직ㆍ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증언을 사실상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 증언이 이 부회장의 유죄 판결에 일정 정도 기여하게 됐다”며 “이 부회장 개인에게는 고통이겠지만 이걸 계기로 삼성이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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