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아자동차 전ㆍ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1조원 대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비슷한 소송 때마다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내세운 사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권혁중)는 31일 기아차 근로자와 퇴직자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기아차는 원고들에게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원 등 4,223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4,223억원은 노조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의 38.7%에 해당한다.
기아차 근로자들은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간 받았던 연간 700%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며 2011년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임금은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 수당 산정 기준이 되고 임금 총액을 기초로 산정하는 퇴직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판부 이날 판결에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정기적으로 지급되고(정기성), 같은 조건과 기준의 모든 근로자에게는 일률적으로 주며(일률성), 돈을 받기 전에 금액이 확정돼 얼마를 받을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정성)는 통상임금 요건을 충족한다고 봤다. 그러나 노조가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일비(일일 활동비 개념으로, 영업 활동을 수행해야 지급되는 임금)는 인정하지 않았다.
기아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빼고 임금인상을 합의한 것은 쉽게 뒤집을 수 없는 노사간의 약속이라는 취지로 신의칙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2015년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고, 이 기간 매년 1조~16조원에 이르는 이익잉여금을 보유한 점 등을 근거로 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적용을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행사”라면서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존립의 위태’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 이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아차 측은 선고 직후 “노조의 청구금액에 대비해 부담이 줄기는 했지만, 현 경영상황으로는 판결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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