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기인 오늘 우리는 ‘국민의 왕세자비’를 기억합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켄싱턴 궁전 남문인 골든 게이트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붙었다. ‘국민의 왕세자비’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사에서 그를 지칭한 말이다. 플래카드 주변에는 20년 전 이날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비를 기억하는 이들이 남긴 사진과 꽃, 카드들이 가득 붙었다. “내 마음 속 여왕”이라고 쓰인 손 편지 옆으로 다이애나비에게 어린 아들이기만 했던 윌리엄 왕세손이 아빠가 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손주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다이애나비의 20주기인 이날 영국인들은 빗속에도 왕실의 아이콘이었던 그를 추모하기 위해 주요 기념장소를 찾았다. 20주기에 맞춰 영연방인 호주 멜버른에서 ‘추모 여행’을 왔다는 교사 타샤 제인은 “1990년대 런던에 살았는데 다이애나의 유쾌하고 인도주의적인 모습에 매료됐다”며 “20년만에 다시 헌화하기 위해 이곳(켄싱턴궁)을 찾았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영국 언론들도 다이애나비의 일생 또는 1997년 8월 31일 시민들 각자의 기억을 담은 회고 기사를 실어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현장인 프랑스 파리 알마교 지하터널 인근에 위치해 비공식적인 추모 기념물이 된 ‘자유의 불꽃’상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윌리엄의 부인 케이트 왕세손빈은 전날 켄싱턴궁 내 20주기를 기념해 새로 조성한 ‘화이트 가든’을 찾아 조용히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왕실은 다이애나비가 생전 즐겨 찾던 ‘성큰 가든’을 그가 좋아하던 식물과 흰 장미, 백합 등으로 재단장했다. 윌리엄과 해리는 앞서 BBC와 I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이애나비 생전 모습과 사망 당시 심경 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20년의 세월이 지난 만큼 다이애나비도 점차 역사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생전 다이애나비가 왕실 구성원으로서 보인 파격 행보와 그의 치솟던 인기를 기억하는 세대는 40~50대 이상으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에겐 케이트 왕세손비가 새로운 왕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친구와 함께 켄싱턴궁을 찾은 18세 플로스 윌콕스는 “사실 다이애나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다”며 “이제 모두 케이트만 얘기한다. 그가 우리 세대의 다이애나”라고 눈을 반짝였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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