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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콩, 너는 죽었다

입력
2017.08.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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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타작이란 말을 듣기 어렵다. 농촌에서도 아마 타작이란 말을 자주 쓰지 않을 것 같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곳곳에 타작마당이 벌어진 풍경을 차창 밖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언제적이었나.

곡식이 여물면 타작을 해야 한다. 벼와 보리, 수수 등은 이삭에서 낟알을 털고, 콩이나 녹두, 팥 등도 꼬투리에서 알갱이를 털어 거두어야 한다. 예전에는 콩이나 팥 등은 도리깨를 써서 두들겨 알을 떨구었다. 꼬투리가 바싹 마르고 알갱이가 잘 여물면 꼬투리가 탁 터지며 낟알이 멀리 튀어나간다. 가을의 타작마당은 분주하고 풍요롭고 노동의 기쁨,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축제의 시간이다.

콩 타작을 할 때면 유난히 멀리 달아나는 콩알이 있다. 콩알 하나하나가 귀하니 콩대를 타작하고는 멀리 튀어나간 녀석들도 잘 찾아 거두어야 한다. 김용택 시인의 동시 ‘콩, 너는 죽었다’는 농촌의 콩 타작마당을 흥겹게 불러온다. 아이들은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또르르또르르 굴러가”는 콩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콩알은 마당 가 이 구석 저 구석까지 빠르게 굴러가 숨는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흥이 난 아이들은 가락을 맞춰 노래한다. 콩알은 도랑으로도 굴러가고 풀섶으로도 들어갈 텐데, 어, 어, 콩 하나가 공교롭게 쥐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독 안에 든 쥐랄까. 그때 나오는 아이들의 탄성 “콩, 너는 죽었다”는 그 순간의 아이들의 환희를 담고 있다. 꼼짝 없이 잡혔어! 굴러가는 콩을 잡는 것은 수확의 한 과정이면서 가을을 만끽하는 놀이이다.

콩 타작이 뭔지 잘 몰라도 이 시는 재미있게 읽힌다. 콩을 잡으러 가는 단순한 놀이와 이제 잡았다는 순간의 기쁨이 짧은 시의 전개에서 흥겹게 정점을 찍는다. ‘섬진강’(1985) ‘맑은 날’(1986) 등 빼어난 민중 서정시로 등장한 김용택은 첫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1998)에서도 섬진강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여실하게 담아냈다. 시인이 교사로서 덕치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함과 솔직함도 시인의 동시 바탕을 단단하게 하였다. 기존 동시의 상투적인 화법, 현실과의 거리, 가르침을 주려는 경향을 벗어나 터 잡은 고향의 삶을 자기 것으로, 자기 언어로 당당하게 말하였다. 2000년대 이후 서서히 시인들의 동시 쓰기가 점화되어 뜨겁게 열기를 띠어 간 데에는 이 동시집이 발화점이 되었다고 하겠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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