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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히든 히어로] 나는 왜 테니스를 하는가?

입력
2017.08.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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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국 NH농협은행 초대 스포츠단장이 8월 30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사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박용국 NH농협은행 초대 스포츠단장이 8월 30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사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주니어 선수들이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스포츠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8월 23일 출범식을 갖고 본격 닻을 올린 NH농협은행 스포츠단의 박용국(52) 신임 단장은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하며 농사꾼이 가을걷이에 만석을 거둔 듯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30일 서울 중구 통일로 NH농협은행 본점에 자리한 스포츠단 사무실에서 본보와 만난 박 단장은 “인재를 육성하고, 또 어린 선수들이 우리 스포츠단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도록 하고 싶습니다”며 스포츠단을 설계하고 창립하기까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봤다. 테니스 감독에, 농협대학 강사, 그리고 방송 해설위원까지 1인3역으로 하루 25시간을 살면서도 박 단장의 머리 속에는 늘 스포츠단 창립 숙원이 떠나지 않았던 것.

NH농협 여자테니스팀 감독이었던 박 단장이 수장을 맡았고, 여자정구팀을 맡았던 장한섭 감독이 부단장을 맡았다. 박 단장은 “시중 은행들이 스타선수 마케팅이나 골프대회 후원 등 인기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과는 달리, NH농협은행 스포츠단은 테니스ㆍ정구 등 종목의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적극 지원해 한국 스포츠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프로뿐 아니라 동호인 대회도 개최해 생활체육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1959년 정구팀, 1974년 여자테니스팀을 발족시키며 라켓스포츠의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NH농협은행이, 이를 한 데 엮어 스포츠단으로 발족시킨 데에는 지난 20여 년간 필드에서 직접 유망주들을 지도하고 좋은 성적을 이끌어냈던 박 단장의 경험이 한 몫 했다.

“20여 년 동안 필드에서 대회를 유치하고, 어떻게 하면 많은 관중이 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지역 동호인들 대상으로 원포인트 클리닉 등 이벤트도 열었어요. 감독 부임하고 나서는 테니스협회 경기이사와 실업테니스연맹 전무 등을 거치면서 수 차례 대회를 치러 본 경험을 가지고 지도자 인생 막바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농협이 갖고 있는 자산을 한 데 엮어서 스포츠단으로 발전시키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근본적으로 ‘나는 왜 테니스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컸다고 덧붙였다.

박 단장이 세운 1차 목표는 소속 선수의 5년 내 세계랭킹 100위권 진입이다. “코치를 하면서 여자선수를 랭킹 180위권까지 만들어봤어요. 4대 메이저대회를 뛸 수 있는 랭킹은 150위권이지만 180위는 정규 투어(WTA)대회에서 뛸 수 있는 수준이죠. 거기서부터는 본인이 갖고 있는 노력과 재능이고, 우리의 목표는 그 수준까지 선수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주니어육성 프로그램 만들어서 조기에 키우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맡은 선수를 세계 무대에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목표일 것이다. 박 단장은 국내 선수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큰 무대’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디딤돌을 놓기로 했다. “외국 사례를 보니까 14~16세 때 프로에 뛰어들더라고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시합 뛴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톱100에 올라가려면 보통 7~8년은 걸립니다. 월드스타로 성장하려면 최대한 빨리 세계 무대에 부딪치는 경험을 쌓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어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안주하면 밖을 못 보는 거죠.”

박 단장은 농협 테니스팀의 감독을 맡은 이듬해인 2008년 NH농협은행 고양 국제여자챌린지대회 창설을 주도했다. 당시 챌린지대회보다 등급이 낮은 국제테니스연맹(ITF) ‘서킷대회’(총 상금 1만 달러) 규모였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국 시합 나갈 기회가 없으니, 국내에서 이런 대회가 생기면 꿈을 키우고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봤죠. 랭킹 200~300위권 선수들이 주로 뛰고 있는 이 대회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포인트를 따서 랭킹 올리고,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죠.”

경기 고양시 성사시립코트에서 첫 문을 연 이 대회는 척박한 한국 여자테니스 현실에 단비 노릇을 해왔다. 이후 서킷대회는 2009년부터 총상금 2만5,000만달러 규모 챌린지대회로 승격됐다. 박 단장은 스포츠단의 단장을 맡게 되면서 소속 선수들의 실력 향상 외에 좀 더 중장기적인 목표도 세웠다. 국내 스포츠계 전반의 저변 확대다. “요즘 테니스 트렌드는 파워, 즉 공격적인 테니스인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엘리트체육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승리만을 위한 기계’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생활체육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서, 성적에 구애 받지 않고 누구나 즐기다가 재능이 있으면 선수로 크고, 이런 건전한 문화를 통해 체육 전반의 저변을 탄탄하게 정착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이런 구상에 따라 박 단장은 프로 육성뿐 아니라 아마추어 대회 또한 비중 있게 챙길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전국테니스동호인대회, 시도대항 정구동호인대회, 아마추어 배드민턴 랭킹리그 등 생활체육 대회에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조금씩 바꿔나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간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선수도 배출할 수 있겠죠.”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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