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는 장부 표지에 '매일기록부'라고 써 붙였지만 실제로는 ‘치부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금전 출납을 기록했지만 한편으론 ‘검은 돈’의 내역도 포함됐음을 뜻합니다.” 한 방송의 뉴스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서 기자는 ‘장부(帳簿)’와 치부(置簿)’를 구분하며, ‘치부책’을 ‘검은 돈의 출납 내역을 기록한 책’이란 뜻으로 썼다.
‘치부’가 “금전이나 물건 따위가 들어오고 나감을 기록함. 또는 그런 장부.”(표준국어대사전)로 풀이된 걸 보면, 이처럼 ‘장부’와 ‘치부’를 구분하는 언어 의식은 특이하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 의식은 뇌물 사건을 보도하는 방송과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뜻이 같은 말을 이처럼 다르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장부’는 19세기 말경에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다. 근대 문물과 함께 들어온 한자어는 대부분 우리말에서 쉽게 자리를 잡았지만 ‘장부’의 처지는 달랐다. 조선후기에 이미 동일한 뜻의 ‘치부’가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으니, 신생 한자어 ‘장부’는 ‘치부’의 저항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장부’는 금세 ‘치부’를 밀어내고 공식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의 치부책’과 ‘시장 바닥 일수쟁이의 치부책’이란 말을 들은 사람은 ‘규격화되지 않은 조잡한 장부’를 떠올릴 것이다. ‘치부’를 ‘검은 돈의 출납 내역을 기록한 책’ 정도로 생각하는 언어 의식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이처럼 경쟁에서 살아남은 낱말이라도 공식 용어에서 밀려나면 그 의미가 축소되거나 의미적 가치가 하락하기 마련이다. 언어 세계에서의 생존 경쟁도 정글만큼이나 치열하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