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육군대위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와 동료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의 대륙 횡단 서부 탐험 행정(行程)이 1803년 8월 31일 시작됐다. 참가자 33명이 일리노이주 우드리버 인근에 캠프를 짓고 동계훈련을 마친 뒤 미주리 강에 배를 띄운 1804년 5월 14일을 탐험의 시발로 보기도 하지만, 학계는 그들의 강 탐사 주선인 55피트 길이의 평저선(Keelboat)이 건조돼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강을 출발한 저 날을 탐험의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온 1806년 8월 23일까지 만 3년, 미주리 강 출발 기점으로 보면 2년 3개월 동안 그들은 미답의 대평원과 로키산맥,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 해안지역을 탐사했다. 거리로는 왕복 8,000마일.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1978년 그들이 항해하고 걷고 오르내린 길을 ‘루이스 클라크 국립 역사 트레일’로 지정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빼어난 토지 투자자였다. 그는 미국이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 대서양 연안 13개 주에 머무는 걸 원치 않았다. 대륙 전체를 원하던 그는 프랑스 공사를 통해 나폴레옹 영지였던 뉴올리언스 매입 협상을 지시했고, 1803년 미시시피 강에서 로키산맥 분수령에 이르는 약 83만 평방 마일을 1,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리고 로키산맥 너머, 태평양에 이르는 수로를 원했다. 중국 등 동방무역 수로 확보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더 원한 건 산맥 너머의 땅이었다.
의회 특별예산을 확보한 제퍼슨은 즉각 루이스에게 배의 건조를 비롯 탐사 장비를 준비시키고, 의학과 지리ㆍ동식물학과 천문학 기초 지식까지 습득하게 했다. 대원 통솔과 답사지 지도 작성은 클라크가 맡았고, 원정대를 선도하며 지형 및 동식물을 관찰 기록하는 일은 루이스의 소임이었다.
그들은 답사를 통해 동부 대서양에서 북서부 태평양에 이르는 수로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신 140여 장의 서부 지도를 그렸고, 동물 122종과 식물 178종을 발견해 보고했다. 또 수많은 인디언 부족과 안면을 트며 미국의 존재를 알렸다. 자잘한 충돌은 있었지만 대체로 우호적이었던 것은 백인과는 거의 초면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탐험대는 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무기와 더불어 위스키와 담배, 거울 등 장신구를 선물로 준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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