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참사 때와 같은 시기
루이지애나주 남서부에 상륙
텍사스 사망자 30여명 달해
미국 텍사스주를 휩쓴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이번에는 12년 전 ‘카트리나 참사’를 겪었던 루이지애나주를 덮쳤다.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무려 2,500여명의 인명피해를 낳는 등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는데, 그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루이지애나주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ㆍCNN방송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에 물폭탄을 터뜨린 뒤 멕시코만에 잠시 머물던 하비는 이날 오전 루이지애나주 남서부의 캐머런시 해안으로 재상륙했다. 미 기상당국은 “시속 72㎞의 비바람을 동반한 하비는 열대 폭풍으로 세력이 약화됐으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세가 다소 꺾였다곤 하지만, 아칸소주와 테네시주 등을 거쳐 미 본토를 빠져나가기에 앞서 루이지애나주에 상당한 양의 비를 뿌릴 것이며,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보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 국립허리케인센터 기상학자인 데니스 펠트겐은 “많은 주민들이 폭풍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말했다.
전조는 이미 시작됐다. 하비의 여파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선 전날 오전에만 50㎜(2인치)의 강수량이 기록됐고, 폭우로 인해 500명 가량이 대피했다. 직ㆍ간접적 피해를 입은 주민들도 5,0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존 벨 에드워즈 루이지애나주 주지사는 “카트리나 참사 이후 우리는 폭우와 홍수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공교로운 대목은 하비의 재상륙 시점이 카트리나 참사 12주기와 딱 겹친다는 점이다. 루이지애나주로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현재 진행형’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CNN은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에 대한 ‘데자뷔(기시감)’와 함께 29일 아침을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전날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카트리나 12주기 행사도 주말로 미뤄졌고, 에드워즈 주지사는 이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텍사스주의 대혼란도 계속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재까지 확인됐거나 추정되는 사망자는 30명이며, 범람 지역에서 구출된 인원도 3,500명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휴스턴 동부의 시더베이유 지역에선 132㎝(51.88인치)의 비가 내려 1928년 열대폭풍 아멜리아가 세운 미 본토의 최대 강우량(122㎝ㆍ48인치)이 경신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텍사스 남부의 멕시코 연안도시인 코퍼스 크리스티를 방문, 피해상황을 보고받은 뒤 “이것은 엄청난 피해규모”라고 말했다. 초대형 자연재해 현장을 직접 찾아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동행한 멜라니아 여사는 발목이 부러질 듯 굽이 높고 얇은 ‘스틸레토 힐’을 신는 등 부적절한 ‘홍수 패션’이라는 빈축만 샀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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