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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최인기씨 사망사건 법정으로

입력
2017.08.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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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회의실에서 ‘국가배상 소송 대리인단 및 유가족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근로능력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회의실에서 ‘국가배상 소송 대리인단 및 유가족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근로능력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심장병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일을 해야 한다니요. 제 남편은 나라에서 죽인 겁니다.”

30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 민변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시민사회단체가 연 ‘국가배상 소송 대리인단 및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3년 전 심장병 등 각종 질환을 앓던 남편을 하늘로 떠나 보낸 곽혜숙씨가 울분을 내뱉었다. 그는 이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시작한다”고 했다. 곽씨와 변호인 측은 국가가 시행하는 근로능력평가 및 취업강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최씨 3주기였던 지난 28일 수원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복지수급자 사망과 관련한 국가배상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개봉한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야기와 비슷하다. 심장질환으로 일 할 능력을 상실한 주인공 남성은 소득이 끊겨 복지수급을 받길 원했지만, 정부는 남성에게 “당신은 일을 할 수 있다”며 “근로능력 있으니 일을 해야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복지수급을 포기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수급에 대한) 재심을 진행했다.

곽씨 남편인 고(故) 최인기씨는 일반수급자로 선정됐다가, 조건부수급자로 변경돼 무리하게 일을 하다 숨졌다. 박영아 공감 변호사에 따르면 최씨는 2008년 처음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다. 좌석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던 그가 심장 질환으로 2005년과 2008년 큰 수술을 받은 뒤 수술비 부담 등으로 형편이 어려워지고 건강 또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데 따른 선택이었단다. 이 때만해도 경기 수원씨는 최씨를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일반수급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2013년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공단에 위탁되면서 최씨는 근로능력이 있는 조건부수급자로 다시 분류됐다. 최씨 부부에겐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시작된 시기다. 곽씨는 “건강 상태는 이전과 다름 없었지만, 이 때부턴 남편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일반수급자와 달리 조건부수급자는 지방자치단체의 자활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 판단에 따라 생계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결국 생계급여 수급을 이어가기 위해 2014년 1월부터 거주지인 수원 권선구의 한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다가 5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쓰러졌고, 그 후 세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곽씨는 “그 때 남편은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급여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매일 일터로 향했지만, 집에 돌아 오면 음식을 먹을 힘도 내지도 못한 채 온 몸이 부어있었다”며 울먹였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최씨는 본인 신체상황과 맞지 않는 무리한 취업강요 정책에 의해 목숨을 빼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활근로라 할지라도, 근로자가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등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국가와 지자체는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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