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입해 박물관에 팔기로 했지만
도난품이라며 돌려주지 않자 소송
법원 “국내서는 선의취득 인정되지만
미국서는 불인정 소유권 주장 못해” 패소
도난 당한 물건인 줄 모르고 미국 경매사이트에서 조선왕실 도장을 구매한 남성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되파는 과정에서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에선 도난품이라는 인식 없이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한 물건을 되팔 때 물건 값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1월 30일 미국의 한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일본 석재 거북(Japanese Hardstone Turtle)’이라는 제목의 물건을 9,500달러(약 1,000만원)에 낙찰 받은 뒤 국내로 반입했다.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보니 조선 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어보(왕실 의례를 위해 제작된 도장)였다. A씨는 몇 달 뒤 국립고궁박물관이 유물 공개 구입 공고를 하자 2억5,000만원에 어보를 내놓았다. 하지만 심의 결과 도난품인 것으로 확인됐고, 박물관 측은 “2억5,000만원을 줄 수도 없고, 어보를 반환해줄 수도 없다”는 입장을 냈다.
해당 어보는 6ㆍ25전쟁 당시 서울의 궁궐 등에 보관돼 있던 다른 어보들과 함께 도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어보는 고물상이나 미군 등으로부터 회수됐지만 상당수는 해외로 반출됐고, 문화재청은 2015년 3월 미국에 도난문화재 반환을 위한 수사협조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 기록된 문화재 목록에 문제의 어보도 포함돼 있었다.
A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경매나 문화재 매매업자 등으로부터 선의로 매수한 경우에는 피해자 또는 유실자(국가)는 대가를 변상하고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87조 5항을 근거로 들었다. 민법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경매를 통해 어보를 반입하기 전 어보가 보관돼 있던 곳이 적용하는 법에 따라 소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A씨가 어보를 구입한 미국 버지니아주 법률은 도난품을 취득한 경우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비록 경매사이트에서 낙찰 받았더라도 버지니아주법에 따라 A씨는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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