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오모(31)씨는 지난해 8월 유명 인터넷 사이트의 웹툰 갤러리에 동성애 음란물 만화 일부를 올렸다. 목적은 음란만화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란만화 유통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씨는 건전만화사랑 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서 남성간 유사 성행위 장면이 담긴 이 만화가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제작한 만화를 판매하는 만화 페스티벌에서 배포ㆍ판매될 것이란 우려 섞인 얘길 듣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음란물을 그린 만화가가 홍보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9쪽짜리 만화 샘플을 지인에게서 넘겨 받아 웹툰 갤러리에 올렸다. 그러면서 “제가 만화행사에 갈 수 없으니 가는 분들은 참고 바란다”며 실물 음란 만화책을 현장에서 수집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오씨는 이전에도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제작한 음란만화가 미성년자에게도 팔리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음란만화란 증거를 가져오면 접수해주겠다”는 경찰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물증 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오씨의 글을 본 네티즌 등의 도움으로 오씨는 음란 만화책을 확보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오씨는 만화가로부터 반격을 당했다. 만화가가 자신의 저작물을 동의 없이 함부로 웹툰 갤러리에 유포했다며 저작권법 위반으로 오씨를 고소한 것이다. 검찰은 오씨가 무단으로 사이트 접속자들이 만화를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벌금 7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오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올 4월 오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오씨가 음란물로 보이는 만화가 미성년자들에게 배포되는 것을 막으려는 행동의 일환으로 게재한 분량은 피해자가 홍보용 샘플로 올린 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오씨가 예전에도 ‘함께 음란물 배포를 단속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렸던 사실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어 “해당 부분 만화 내용도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유사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만화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오씨의 게시가 만화 수요를 대체할 만한 영향력 있는 행위라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법원의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오씨의 게시 의도는 ‘단순히 자료를 받아가라’는 취지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만화가가 게시한 만화샘플은 비록 ‘홍보용’이지만 성인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어 ‘공표된 저작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씨 측은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한 공익목적의 신고를 위한 조치였는데, 검찰이 사건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억지스럽고 기계적인 기소를 했다”고 반박했다.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김성대)는 1심과 동일한 취지로 검찰 주장을 기각하고 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이호영 법무법인 삼율 대표변호사는 “오씨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공표된 저작물을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했음을 법원에서 재차 인정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씨의 신고로 수사를 받은 만화가는 음란물 유포죄로 올 1월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하지만 만화가도 억울하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7월 “유사성행위를 묘사하긴 했지만 음란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