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빈곤 전문가 후지타 방한
“복지 시스템 선진국에 크게 뒤져 문제”
‘어스름한 빛 속에 잠이 깬다. 때로 더러워진 이부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냄비에 남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약을 한 줌을 털어 넣는다. 처방 받은 약은 비싸서 절반만 먹는다. 지난달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니 20만엔(200만원)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일본에서 출간된 ‘하류노인(下流老人ㆍ한국판 제목 ‘2020 하류노인이 온다’)’의 일부분이다. 노인빈곤 문제 전문가 후지타 다카노리(藤田老典)씨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고령화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최근엔 일본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9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후지타씨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빈곤이 찾아온다”며 고령화 한국 사회에 경고를 날렸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액으로 생활하는 고령자를 ‘하류노인’으로 분류했다. 연금수입 부족, 불충분한 저축액, 의지할 사람 없는 고립 등은 하류노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현재 일본에서 기초생활보장을 받는 가구의 51%는 고령자로, 일본 내 하류노인의 수는 700만~1,100만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하류노인이 젊은 시절부터 ‘하류’는 아니었다. 그는 “한창 일할 시기에는 노후 준비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점차 각종 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 성인이 된 자식에 대한 부양 부담, 치매로 인한 사기 피해 등으로 평범한 중년에서 순간 하류 노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후지타씨는 젊은 세대 비정규직 확대가 하류 노인으로의 전락 가능성을 높이는 악순환도 지적했다. “젊은 세대가 빈곤해지니 고령자를 부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일본의 현실은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률이 가장 높은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층의 빈곤률은 46.9%에 달했다. 앞서 후지타씨는 한국어 번역판에서 “한국의 노인복지시스템은 일본 등 선진국보다 크게 뒤처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류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보장제도와 민간보험을 활용해야 한다는 게 후지타씨의 조언이다. 그는 “시민단체, 노인클럽, 평생학습 등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관계성 빈곤’을 없애는 것도 고령기의 행복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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