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정유라 이름 들었다”
김종 진술과 안종범 수첩
재판부 판단의 결정적 근거로
박ㆍ최 뇌물수수는 가중 처벌 대상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오랜 친분관계가 있다는 점,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에게 최씨 딸 정유라씨를 언급한 점, 승마지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점, 최씨의 독일생활을 직접 챙긴 점 등을 종합하면 둘 간의 공모관계를 충분히 인정 가능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이 부회장 뇌물공여 사건에 있어서 공모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이 부회장이 둘 간의 공모관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판단까지 내렸다. 이 같은 재판부의 결론은 이 부회장 뇌물공여 혐의의 유죄 근거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앞서 재판과정에서 이 부회장 측은 강요에 의한 지원임을 강조하고, 뇌물성을 반박하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제시한 증거 어디에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직접 승마 등 뇌물사건에 관해 상의하거나 논의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부회장 측의 이러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40년 지기인 최씨는 물론 그의 딸인 정씨와 친분 관계가 두텁다고 봤다. 이런 3자의 관계 하에서 박 전 대통령이 유독 승마에 관심을 피력하고 정씨를 챙긴 점을 뇌물사건 공모관계의 정황으로 판단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정씨 이름을 들었다”는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증언과 “대통령께서 정씨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셨다”고 말한 삼성 관계자의 증언은 그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이외에도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협회 지원 제대로 하라’고 한 점 ▲최씨가 삼성의 승마지원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점 ▲2015년7월25일자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최씨의 관심사였던 ‘빙상협회 후원’ 등 문구가 다수 기록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 부회장 측은 승마 지원을 위해 제공한 금품이 박 전 대통령에게 가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 행위가 죄가 되기 위해선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 공동체’라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무원(대통령)과의 공모를 통해 비공무원(최씨)이 뇌물을 받게 되는 경우도 공동정범이 된다는 형법33조를 예로 들면서 ‘경제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꼭 증명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공범으로 묶인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향후 본인들의 뇌물 혐의 재판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됐다. 뇌물수수자의 경우 가중 처벌돼 1억 원 이상인 경우 10년 이상의 형에 처해진다.
경영권 승계작업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과 함께 대가로 건네진 삼성 측의 금품 지원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1심 판결 논리는 항소심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공무원에게 직접 돈이 가지 않고 공모관계에 있는 비공무원에게 전달됐다고 한다면 돈을 준 쪽의 구체적인 청탁이 필요하다고 보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항소심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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