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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도 없이 한 해 100여건 철거… 결국 왼쪽 폐 잃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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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도 없이 한 해 100여건 철거… 결국 왼쪽 폐 잃었죠”

입력
2017.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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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나 숨이 차 병원 찾아

폐암 진단 받고 수술 시작해

악성중피종이라는 사실 알아

5년 지급 구제급여 내달 종료

갱신 어려울 수도 있어 답답

대표적 석면암인 악성중피종 환자 채경석씨가 지난 9일 자신의 강남구 토목업체 사무실에서 과거 자신의 석면 노출 경험을 말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대표적 석면암인 악성중피종 환자 채경석씨가 지난 9일 자신의 강남구 토목업체 사무실에서 과거 자신의 석면 노출 경험을 말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토목업체 사무실에서 지난 9일 만난 채경석(59)씨는 2004년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해서 왼쪽 폐가 없다”는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말을 중단하고 끓는 가래침을 뱉어냈다. 마약 성분이 있다는 진통제도 먹었다. 그래도 그는 “악성중피종은 90% 넘게 사망한다고 했던 의사가 나보고는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한다”며 웃었다.

채씨는 1980년대부터 중형 굴착기를 몰고 주택가 공사장을 누볐다. 주 무대는 서울. 슬레이트 지붕이나 천장 텍스가 잔뜩 매달린 헌 집을 부수는 게 20대 초반의 신출내기 기사의 주 임무였다. 그는 “동작구 사당동, 마포, 미아리, 태릉 할 것 없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물도 뿌리지 않은 채 집을 부숴 먼지가 뿌옇게 날렸지만, 채씨를 비롯해 현장 인부들 중 마스크를 쓰고 일한 이들은 없었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석면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기도 했다.

주택가 철거 현장을 헤집었던 당시의 기억이 다시 소환된 것은 30년이 훌쩍 지난 2004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숨이 차 죽겠더라고. 잘 아는 내과 원장을 찾아가서 엑스레이와 컴퓨터 단층촬영(CT)까지 찍었지.”

며칠 후, 그는 잠결에 부인이 통화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채씨는 “집사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의사와의 통화였다”며 “병원에 갔더니 (남은 시간을) 6개월 정도 보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진단명은 폐암. 남보다 늦게 결혼해 낳은 아이 둘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그의 병이 폐암이 아니라 석면암, 즉 악성중피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수술실에 들어가 몸에 칼을 댄 뒤였다. 담당의사는 악성중피종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종양은 이미 왼쪽 폐로 깊이 침투한 상태. 채씨는 그날 왼쪽 폐 아랫부분을 잘라냈다.

남은 치료는 더 혹독했다. 국립암센터 의사는 그에게 “고강도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데 폐의 수술 부위가 치료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해 9월 17시간 동안 진행된 2차 수술에서 왼쪽 폐 전체를 잘라내고, 종양 전이를 막기 위해 부어 있는 횡경막도 다 걷어냈다.

다행히 아직까지 종양이 재발하지는 않았지만, 채씨는 9월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하다. 한국환경공단이 악성중피종 환자에게 5년간 지급하는 구제급여가 종료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석면 질환이 재발하지 않는 이상 급여가 갱신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위의 말은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당시를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때는 한 달에 보통 10건에서 12건 정도, 서울에서만 1년 동안 100건 이상의 주택 철거를 마구잡이로 했었지.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해. 누군가 석면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해줬더라면, 그래서 공사 현장에서 물이라도 뿌리고 철거작업을 했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오지 않았을까 하는…”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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