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역사를 알리면 안 되지요. 대구에 있는 순종 동상이 역사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 전에 철거해야 합니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 앞 순종 동상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던 오홍석(58)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대구역에서 달성공원에 이르는 ‘순종 어가길’과 순종 동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기념할 가치가 없는 역사를 관광 상품화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철저한 고증도 없이 만들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중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대구 방문 길을 관광 상품화하기로 했다. 1909년 1월 7일 순종이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구를 방문했다. 마산·부산 등 경상도 중 첫 방문지였다. 중구청은 이를 ‘순종 어가길’로 이름 지었다. 그리고 순종이 지나간 도로 변에 조형물과 벽화, 쉼터 등을 설치했다. 순종이 도착한 달성공원 앞에는 아치형 다리 위에 높이 5.4m의 대례복(국가의 중요 의식 때 입는 옷) 차림의 순종 동상을 세웠다. 사업비로 모두 70억원이 들었다. 중구는 굴욕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 교육 현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오 지부장은 순종 동상 철거 이유로 역사 왜곡을 들었다. 당시 순종의 순행은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내세워 반일 감정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마련한 일본 천황가의 풍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순종의 방문을 임금이 백성의 삶을 살피기 위해 찾은 ‘순행’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크 투어리즘의 소재를 찾으려면 많다”며 “동상이 시민과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만큼 철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순종 동상 과정에 고증도 문제 삼았다. 당시 순종의 복장은 대례복 차림이 아니라 프러시아 군복을 입었다고 했다. 오 지부장은 “일본을 돕겠다고 나섰던 순종을 기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구청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 지부장의 이 같은 활동 뒤에는 선친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했던 오세응(80년 작고)씨다. 하지만 독립유공자가 아니다. 어릴 적 그의 물음에 아버지는 “‘그런 걸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셨다”고 했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나라를 위해 애쓴 이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역사 바로잡기 운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는 29일 순종 동상 앞에서 철거운동 선언을 한다.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인 만큼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오 지부장은 “동상을 철거해도 건립에 들어간 2억5,000만원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광복 이후 지금까지 청산되지 못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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