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공연 마니아들의 마음까지 풍족하게 하는 계절이다. 국내 최대 공연 축제로 꼽히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ㆍ스파프)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ㆍ시댄스)가 9월과 10월 잇달아 열린다. 이미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은 물론,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과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연 등 다양한 성격의 무대공연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공연 당일 처음 대본 읽는 배우, 형식파괴 1인극
올해 17회를 맞는 스파프는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한달 간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개최된다. 연극과 무용, 그리고 두 장르가 결합한 공연을 선보인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개ㆍ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와 스파프가 공동제작한 연극 ‘위대한 조련사’와 스파프 기획의 1인극 ‘하얀 토끼 빨간 토끼’가 기대작으로 꼽힌다.
이란 작가 낫심 술리만푸어가 2010년 집필한 ‘하얀 토끼 빨간 토끼’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실험극이다. 본래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은 이 작품에서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대본을 볼 수 없다. 사전 리허설이나 연출도 없이 무조건 공연 당일 무대에 선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배우의 즉흥연기가 이 작품을 오롯이 이끄는 것이다. 손숙, 하성광, 김소희 등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 6인이 차례로 자신만의 무대를 관객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이 작품의 감독을 맡은 이병훈 연극연출가는 “배우들에게 주문한 것은 작품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고 공연장으로 오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국내 작품을 비롯해 루마니아, 아일랜드, 영국 등 총 7개국의 17개 작품이 공연된다. 프랑스 신예극단 떼아트르 드 랑트루베의 얼음인형극 ‘애니웨어’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바탕으로 한 아일랜드 극단 데드센터의 연극 ‘수브니르’는 이미 전석 매진됐다. (02)2098-2985
20살 된 시댄스, 예술성과 독창성 한 자리에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시댄스는 올해로 20회를 맞는다. 10월 9일부터 21일간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등에서 열린다.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 끄는 축제의 포스터는 스위스 안무가 야스민 위고네의 ‘포즈 발표회’다. 무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지만 이 작품엔 음악과 의상이 없다. 위고네가 보여주는 음악은 침묵이다. 오직 사람의 몸만으로 무대 위에서 음악과 리듬을 만들어 내는 이 작품은 독창청과 세계무용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댄스 모자이크’ 섹션에 초청됐다.
반대로 오스트리아의 알렉스 도이팅어와 알렉산더 고트파르프는 20㎏에 달하는 중세기사 갑옷을 입고 춤을 추는 ‘기사도는 죽었다’를 선보인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중세시대의 기사도는 아직까지도 갑옷으로 작용한다고 있다며 아이러니를 벗어버리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개막작은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러셀 말리퍼트 컴퍼니가 4편의 작품으로 구성한 ‘숨기다 드러내다’다. ‘춤과 조명과 음악의 빛나는 삼중주’라는 극찬을 받은 공연이다. 이밖에 19개국 45개 단체가 참여한 작품 40여편이 공연된다. (02)3216-1185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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