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붕괴로 인한 황폐화, 교훈 잊어선 안 돼”
트럼프ㆍ공화당 정권 규제 해소론에 경고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장이 “위기 이후 금융 개혁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 월가가 밀어 붙이는 일련의 규제폐지 움직임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옐런 의장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담 ‘잭슨홀 미팅’ 공개연설에서 “거대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제정된 규제는 금융시장을 실질적으로 더 안전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2007~9년 사이 금융시장 붕괴로 인한 황폐화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최근의 성장세를 낙관하고 규제 해소를 촉구하는 기류에도 경고를 날렸다. 옐런 의장은 연준이 소규모 은행이 직면한 규제의 복잡성을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 금융기관의 자기자본 거래를 규제하는 ‘볼커 룰’ 적용을 느슨히 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옐런 의장의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금융 규제 해소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지난 버락 오바마 정권 때 제정된 ‘도드-프랭크법’ 등 금융규제를 대대적으로 해체해 시장의 성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장관이 이끄는 미 재무부는 6월 147쪽짜리 보고서에서 연준의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강도를 낮추고,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볼커 룰’ 적용도 느슨하게 할 것을 지지했다.
옐런 의장은 연준의장으로서는 올해 마지막 잭슨홀 미팅 연설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규제 해소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규제 존속을 지지한 옐런 의장을 연임시키는 대신 새 인물을 의장 자리로 보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연준 금융담당 부의장으로 랜달 퀄스 전 재무차관을 지명했는데 퀄스 전 차관은 과도한 시장개입에 비판적인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차기 연준의장으로 역시 시장주의 성향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을 기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옐런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금융규제 문제만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시장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망하거나 기준금리를 조정할 것이라는 발언은 극도로 삼갔다. 그는 “금융 시장 상황을 당장은 걱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가깝든 멀든” 과도한 낙관주의와 잦은 만기전환, 레버리지(타인의 자본을 이용한 투기행위) 등이 다시 등장할 수 있지만 “지난 금융위기의 교훈이 남아 있다면 금융시스템과 경제가 미래의 위기를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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