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25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기소된 5개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지난 5개월 간 특검팀과 변호인단의 팽팽한 공방으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쉽게 결론이 났다. 이 부회장 측은 유죄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징역 12년을 구형한 박영수 특검 측은 형량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뇌물수수자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유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인정 여부였다. 뇌물공여가 유죄로 인정되면 그와 연관된 나머지 혐의(횡령ㆍ재산국외도피ㆍ범죄수익은닉ㆍ위증)도 유죄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검 측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과 미르ㆍK스포츠재단 지원 등이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이 부회장 측은 경영권 승계 작업은 ‘가공의 틀’이라며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지원이라고 반박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의 뇌물성은 부인하면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조치이고 승마지원과 대가 관계에 있다고 특검 손을 들어줬다. 청와대에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점에 비춰 박 전 대통령도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봤다. 결국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이 뇌물 공여에 수동적으로 응했지만 승계작업에 대한 정권의 도움을 바라고 뇌물을 제공했다고 보았다. 이 부회장과 최씨가 특별한 친분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삼성의 승마 지원과 청와대의 경영권 승계 지원은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을 몰랐다는 삼성 측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하면서 승마 지원에 대한 포괄적 지시를 내렸고, 임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총수 중심 체제로 운영되는 관행에 비추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현대판 정경유착’이라고 질타한 것은 국민의 정서를 대변한 말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이 밀접히 유착한 것으로 정경유착이 과거사가 아닌 현실에서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상실감이 크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이 재벌의 변칙적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린 것은 의미가 있지만 양형에 대한 논란도 나온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법정형이 가장 센 재산국외도피의 경우 50억 이상이면 가중처벌해 10년 이상 징역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재판부가 여러 사정을 참작해 최저 형량의 2분의 1까지 줄여준 ‘작량 감경’을 인정해도 뇌물ㆍ횡령ㆍ재산도피 등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최저 형량을 선고한 것은 경합된 범죄 사실이나 국민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 유죄 선고로 삼성은 글로벌 기업 이미지도 적잖이 손상됐다. 그룹 안팎으로 ‘사령탑 부재’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미래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우려도 잇따랐다.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 이후 비상경영체제를 이어왔다. 기업 경영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자정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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