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문재인 정부 지지 ‘역사적’ 양상
정의로움에 대한 포괄적 공감 결과
경제ㆍ안보정책 불균형 문제는 심각
출범 100일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오늘은 눈부시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연일 고공행진이다. 취임 100일을 맞아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데 따르면 78.6%다. 역대 최고치였던 김영삼 대통령 당시 83%에 육박한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김영삼 정부에 육박한다는 건 ‘역사적’이다. 우파 기득권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염증이 과거 군부정권을 향한 것 못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고, 그만큼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견고해진 새로운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이면의 그늘도 짙다. 그 그늘이 나라를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믿기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이유를 댄다. 대선 득표율이 고작 41%였는데 어떻게 그게 100일만에 두 배가 될 수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설문조사 방식에 이런저런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여론 형성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견과 다르면 고립이 두려워 침묵한다는 ‘침묵의 나선’이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지난 100일에 대해 ‘대체로 잘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잘한 것 맞다. 직전 정부의 파탄이 문재인 정부를 돋보이게 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한 게 많다는 얘기다. 청와대에서의 산뜻한 커피산책이나,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을 눈물로 껴안는 대통령의 모습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책이 좋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힘 없고 덜 가진 국민 다수를 위한 정책 드라이브는 가히 혁명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양극화 해소나 산업질서를 크게 바꿀 공정거래정책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개혁 시도의 연속은 어떤 정부에서도 전례가 없었고 국민의 기대를 되살렸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이 정부는 100일 간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달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의와 공정의 이면에 문재인 정부와 나라를 위험에 빠트릴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현상을 정의와 불의, 공정과 불공정, 당당함과 비굴함 등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정의와 공정함, 당당함을 즉각적으로 선(善)과 동일시 하는 단순한 인식에서 위태로움이 싹튼다는 얘기다. 경제정책만 해도 그렇다. 온통 정의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국부를 키우고 기업을 발전시킬 ‘돈 버는 정책’은 실종됐다. 심지어 일자리 정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나온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대부분이 경제정책이 아닌 정의감에 입각한 사회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대외관계에서의 정의는 ‘당당한 외교’를 표방하는 쪽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를 이은 셈이다. 하지만 당당한 외교는 국내 정책에서 정의감이 드리운 그늘보다 더 짙은 그늘을 대외관계에 드리웠다. 정권 초 절차적 정당성을 들어 내놨던 사드 배치 유보론은 결과적으로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 됐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한국 동의 없이 한반도 군사행동은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오히려 ‘코리아 패싱’에 대한 메아리 없는 항변으로 들리는 서글픈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의 그늘은 이 밖에도 더 있다. 포용적 협치를 일찌감치 포기한 것도 걱정스럽다. 나아가 최근에는 국회를 통한 정상적 대의정치를 불신하며 피해가려는 움직임도 불길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그늘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눈 질끈 감고 감당해야 하는 ‘부수적 피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문제를 파악하여 고치지 않으면 그늘은 순식간에 장마철 곰팡이처럼 자라 문재인 정부의 빛을 단숨에 덮을지도 모른다. 인기의 덧없음을 생각하면 내년 지방선거조차도 불안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정의감이나 당당함에 자족하는 자세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이미 수많은 지적이 나온 경제와 외교안보정책에 드리운 불온한 그늘과 그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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