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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문화로 소통하며

입력
2017.08.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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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통역사로 일하는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중요한 비즈니스 통역이었는데, 영국인 파트너가 한국여성 파트너에게 스카프가 참 예쁘다고 칭찬했을 때, 한국인 파트너가 계속 부인을 하더라는 것이다. 영국인 파트너는 이것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는 칭찬을 해주면 고맙다고 말하기보다 별거 아니라고 부인한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고 말하는 것에 별로 익숙하지 않다. 아주 미안하거나 아주 고마운 상황이 아니라면, 눈 인사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일상적이다. 이심전심, 곧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고마워(Thank you)” “미안해(Sorry)” “부디(Please)” 를 세 개의 매직 워드라고 어릴 적부터 가르친다. 고맙고, 미안한 상황을 분명히 말하도록 철저하게 배운다.

언어와 문화에 따라 기본적 소통의 방법이 다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말을 할 때 눈을 직시하는 문화가 아니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고 이야기 하면 그 자체를 버릇없는 행동으로 여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오히려 눈을 쳐다보고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해 별 관심 없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 듣는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나이에 상관 없이 이름을 부르고, 누구에게나 대명사 ‘당신(You)’ 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인들에게는 처음 만난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몰라 늘 고민한다.

한국 강의실의 질문 문화는 서양의 질문 문화와 매우 다르다. 한국 학생들은 질문할 거리가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옥스퍼드를 방문한 한국 대학생들에게 물어 보니,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의 귀한 시간을 뺏는 것이 미안해 질문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영국 학생들은 다른 사람이나 교수를 별로 개의치 않고 질문을 한다.

최근 필자는 영국 초등 학교의 아시아계 다문화 아이들 관련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이 아이들이 공부는 잘 해도 질문을 잘 하지 않고, 자신들을 불편해 하며 거리를 두는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동양인인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와 같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 이 아이들은 한국 대학생들처럼 선생님에 대해 반항이 아닌 존경의 표시로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 동양의 문화, 서양의 문화를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문화가 옳고 다른 문화가 그르다고도 절대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말로 고맙다고 하는 것보다 눈 인사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렇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영어권 나라에 가서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고마워(Thank you)”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와 다른 타문화 나아가 세계와 소통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뿐 아니라 그 언어가 속한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언어 소통은 반드시 문화 소통 노력과 동시에 이뤄져야 하며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세계 곳곳에 한국인들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눈과 발로 배운 경험과 지식이 언어를 넘어 글로벌 시대 문화 소통의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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