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그날’은 정말 깨끗하고 산뜻하며 자신있을까

입력
2017.08.24 19:19
0 0
한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대에 파란 액체를 부어 흡수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캡쳐
한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대에 파란 액체를 부어 흡수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캡쳐

20대 여성이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길을 걷는다. 영상 속에서 그는 시종일관 환한 얼굴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친구와 수다도 떨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그날에도 걱정없어요!’ 영상의 마지막에 뜨는 문구다. 많은 여성들이 오랜 기간 본 전형적인 생리대 광고영상이다.

생리대 광고를 보면 생리통의 고통, 월경전증후군(PMS), 호르몬 변화 때문에 얼굴에 돋는 여드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리대가 너무 산뜻하고 쾌적해서 생리 기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가며 날아갈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젊은 여성들만 등장할 뿐이다.

1970년 유한킴벌리에서 출시된 펄프 소재 생리대 '코텍스'의 신문광고. 젊은 여성이 바지를 입고 다른 여성의 등을 짚어 뛰어오르고 있다. 광고문구는 '누가 여성을 해방시켜주는가?' 였다.
1970년 유한킴벌리에서 출시된 펄프 소재 생리대 '코텍스'의 신문광고. 젊은 여성이 바지를 입고 다른 여성의 등을 짚어 뛰어오르고 있다. 광고문구는 '누가 여성을 해방시켜주는가?' 였다.

1970년대, 반바지 입고 자전거 타던 여성으로 시작한 생리대 광고

생리대 광고가 처음부터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았다. 1971년 유한킴벌리의 펄프 생리대 ‘코텍스’의 신문광고를 보면 ‘누가 여성을 해방시켜 주는가?’라는 문구와 함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의 모습 등 현대적이며 도시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구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반영된 광고다.

1980년대 생리대 광고는 생리혈 냄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점이 특징이다. 1980년에 출시된 유한킴벌리의 ‘코텍스 디오도’는 생리대 패드에 특수 향처리를 한 방취 생리대라는 것을 내세웠다. 그래서 광고 문구에 ‘우아한 모습’, ‘주위에 밝음과 화사함을 주는’, ‘품위있는’, ‘산뜻한’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월경의 정치학’을 쓴 박이은실씨는 “이 같은 광고는 생리혈 냄새를 강조해 여성의 이미지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며 “생리혈 냄새는 생리대의 화학성분이 혈액과 만나면서 발생하는 특정한 냄새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생리대 광고는 ‘하얗고 깨끗하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생리대 광고는 다양한 모델과 다양한 이미지가 부각되며 변화를 겪는다. 1989년 다국적기업 P&G가 ‘위스퍼’ 생리대를 앞세워 들어오면서 유한킴벌리와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P&G는 유명 여성방송인과 연극인 등 전문직 여성들을 위스퍼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반면 유한킴벌리는 평범한 여대생을 ‘화이트’ 생리대 광고에 등장시켜 서로 다른 이미지로 경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리대 광고의 분위기는 또 바뀐다. ‘순수’, ‘청순’, ‘깨끗한’, ‘하얀’ 등의 이미지가 대세를 이루고 광고 모델도 30, 40대 여성보다 사회경험이 많지 않은 여대생등 20대 초반들이 주류를 이뤘다. 박씨는 “생리대 광고는 제품의 기능을 내세우면서도 당대 남성들이 요구하는 여성상을 철저히 따르고 반영하는 전략으로 변해왔다”고 분석했다.

생리기간은 ‘그날’로, 끈적한 혈흔 대신 파란 액체만

생리대 광고의 특징 중 하나는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생리대 광고는 생리기간을 ‘그날’로 지칭한다. ‘그날 산림욕하듯 여자가 맑아진다’(1999년, ‘위스퍼 그린’), ‘그날이면 어때’(1999년, ‘위스퍼’), ‘그날에도 마음까지 편안한’(2012년, ‘좋은느낌’), ‘그날이 그날일지라도’(2012년, ‘화이트’), ‘누구보다 가벼운 그날의 나’(2017년, ‘순수감촉’) 등 20여년간 생리대의 TV 광고는 생리나 월경 대신 ‘그날’이 등장했다. 이런 광고는 여성들에게 초경 때부터 ‘월경은 감춰야 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든다.

광고 속에 붉은 피도 등장하지 않는다. 생리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생리혈을 흡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피 색깔이 파랗게 바뀌었다.

생리대의 흡수율을 보여주기 위해 파란색 시약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5년 한국 P&G의 ‘위스퍼’ 광고다. 이후 20여년간 생리대 광고들은 점성을 느낄 수 없는 ‘파란 액체’만 주로 등장했다. 2010년대 이후 ‘점도 높은 혈흔의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한 생리대 광고가 나왔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순수한’ 생리대 광고의 중심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든 광고가 지난해 6월 등장했다. 영국의 여성 위생용품 브랜드 ‘보디폼’의 생리대 광고는 처음으로 혈흔이 등장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 광고는 달리기나 권투 등 다양한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손, 발, 다리 등에서 피가 흘러도 운동을 계속하는 모습과 함께 ‘어떤 피도 우리를 멈춰 세울 수 없다(No blood should hold us back)’는 문구를 내보내 생리가 여성의 활동을 구속시킬 수 없다고 강조해 호평을 받았다.

‘산뜻한’ 생리대 광고 이면에는 ‘깔창 생리대’와 발암물질 검출이

수십년간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기간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장하는 동안 생리대 가격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저소득층 청소년이 비싼 생리대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신발 깔창을 대용으로 썼다는 사연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모든 여성의 필수품인 생리대 가격이 처음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지난해 6월 저소득층의 생리대 지원방안을 논의하던 광주 광산구의회에서 새누리당 박삼용 의원은 “위생대, 그러면 대충 다 알아들을 것”이라며 “본회의장에서 생리대라는 것은 좀 적절치 못한 그런 발언이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든다”고 발언해 생리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올해는 생리대에서 발암물질 검출 문제까지 불거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사용한 생리대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감추고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생리대 광고도 이제는 솔직하게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리대의 안전성 검사와 더불어 정부가 짚어보아야 할 또다른 부분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