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금환급보증 시중은행 꺼리자
산은ㆍ기업은행ㆍ신용보증기금 동원
기재부 “지역경제 영향 고려 조치”
이낙연 총리 군산조선소 방문 후
‘독자생존’ 구조조정 원칙 뒤집혀
정부가 장기 불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중소조선사들을 돕기 위해 2020년까지 4년간 총 1,000억원 규모의 선박수주 보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선박수주에 필수적인 선수금환급보증(RG)을 시중은행들이 꺼리자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해 보증서를 끊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조선업계를 위해 대규모 공공선박 발주 계획까지 밝힌 정부가 수주 보증까지 재정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경쟁력 없는 조선사를 국민 세금으로 연명시키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24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중소조선 RG 지급 방안’을 내놨다. RG는 선박을 주문한 선주의 돈을 지키는 안전장치다. 선주는 배를 주문하면서 배값의 일부를 선수금으로 조선사에 지급하는데, 조선사가 갑자기 어려워져 배를 제 때 넘기지 못하면 RG를 끊어준 금융사가 대신 선수금을 물어준다. 때문에 현실에선 RG를 발급해 줄 금융사를 찾지 못하면 제아무리 솜씨가 좋은 조선사라도 선조 계약을 따내지 못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수주절벽에 부딪친 중소조선사를 살린다며 11조원 규모의 공공선박 발주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동시에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자금을 떼일 걱정에 시중은행들이 좀처럼 중소조선사에 RG를 발급해 주지 않자, 정부가 또 다시 나선 것이다. 중소조선사로선 정부가 세금으로 선박을 발주해 주고, 이번엔 보증까지 책임져 주는 셈이다.
이번 보증 지원엔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동원된다. 산은과 기은이 RG를 발급하면 신보가 부분보증으로 위험을 나누는 구조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매년 250억원씩 4년간 1,000억원의 보증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매년 발생하는 중소조선사의 RG 수요(약 550억원) 가운데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는 250억원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책은행과 신보 등에 재정 250억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지원안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 조치”라며 “이 정도 지원이면 업계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보지만 필요하면 추가 대책도 내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가 지역여론 등을 의식해 무리한 지원에 나선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10월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독자생존’을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내건 바 있다. 저가 수주를 막기 위해 RG 발급도 제한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동을 멈춘 군산조선소를 방문한 이후, 한방에 정부 정책 방향이 뒤집혔다는 뒷말도 나온다. 현재 중소조선사 51곳 중 그나마 투자가 가능한 등급의 업체는 13곳에 불과한데, 정부는 지원기준을 더 완화해 투기등급 업체까지 포함해 30여곳을 지원할 계획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 재정으로 보증까지 해주는 건 전례 없는 일로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며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이 중국에 뒤지는 상황에서 조선업 자체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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