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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봉황대기vs 고시엔

입력
2017.08.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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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목동구장. 신상순 선임기자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목동구장. 신상순 선임기자

8월에 열리는 봉황대기는 일본 고교야구 최고의 축전인 고시엔(甲子園)에 비견되는 한국 고교야구 최고 대회지만 일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끝난 99회 고시엔(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는 무려 3,839개 팀이 예선을 거쳤다. 49개 본선진출팀에만 속해도 학교에서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주민들은 버스까지 전세 내 원정 응원을 떠난다. 약 4만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엔구장엔 개막부터 매 경기 만원 관중이 몰려 들었고, 관중석 빈 자리가 나오길 기다리는 팬들도 경기장 밖에 상당수였다. 공영방송인 NHK가 본선 전 경기를 생중계하며, 시청률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일본에서 여름 고시엔 대회가 갖는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선수들은 ‘고시엔대회 출전자’라는 이유만으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고시엔구장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를 다투는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이지만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 8월에 고시엔 대회를 위해 구장을 비워주고 오사카 시내의 교세라돔에서 경기를 한다.

결승전이 아니면 학교 관계자들과 선수 가족들,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들만이 스탠드를 지키며,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로 불린 동대문구장을 철거(2008년)하는 최악의 해프닝 이후 변두리 구장을 전전하는 한국 고교야구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비교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직업 야구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열광하면서 고교야구의 인기가 급격하게 시들어 버린 한국과 달리 풋풋하고 순수한 고교야구의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고시엔 대회는 국민적 관심을 갖는 스포츠다.

우리도 일본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 암표는 기본이었고, 표를 구하기 위한 팬들의 발길이 서울운동장(1985년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에서 동대문시장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을 이뤘다. 1971년 제1회 봉황대기 대회에 출전한 김재박 전 LG 감독은 “모든 고교 팀들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그 시절에 기댈 곳은 고향, 그리고 스포츠밖에 없었다. 그래서 출신 지역 팀이 출전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혼자 가기 섭섭하니 동문 선후배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야구장 동문회’를 만들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시원한 생맥주 한 잔하며 뒤풀이를 즐겼다. 서정환 전 KIA 감독은 “내가 고교생이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 대회에 한 번 출전하려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교생이 모금운동을 하거나 동문회에 손을 벌려야 했다. 그래도 그때만 다가오면 만사 제쳐두고 선수, 동문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나섰다”고 떠올렸다. 오직 ‘축제’를 즐길 때가 다가왔다는 설렘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 고교야구는 단체 응원을 통해 애교심을 고취하고 전 동문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었다. 봉황대기를 소재로 인기를 모은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보면 그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1982년 봉황대기에서 재일동포 팀이 결승까지 올라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치른 혈전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정말 드라마 같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봉황대기는 재일동포 팀까지 방학을 이용해 유일하게 출전할 수 있는 대회이자 대한민국 국적이라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는 야구 축제였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젖줄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정작 학생 야구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제 32강을 남겨 두고 있는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계기로 고교야구에 다시 한 번 1970~80년대의 함성이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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