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식 강한 의지 표현했지만
증원 규모ㆍ철군 시점 등은 함구
16년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가장 기나긴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기기 위해 싸우겠다”며 전쟁 종식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지만, 서구 언론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오히려 샬러츠빌 폭력 사태에서 드러난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수세에 몰리자 아프간전으로 화제를 돌리려는 ‘국면 전환용’에 불과하다는 혹독한 평가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22일(현지시간) 미 주요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아프간전 관련 대국민 연설에서 가장 많은 비판이 제기됐던 대목은 ‘구체성의 결여’다. 그는 아프간에 미군 병력을 추가 파병하겠다는 방침만 밝혔을 뿐, 증원 규모나 철군 시점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미 CNN 방송은 “뼈대에 살을 좀더 붙이기 전까진, 기존 (아프간전 관련) 계획과 동일하다. 단 하나, 워싱턴이 책임을 덜 지겠다는 것만 빼고”라고 꼬집었다. 현재로선 ‘새로운 전략’(new strategy)이라고 부를 만한 게 딱히 없으며, “적들이 전장에서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위협적 언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중요 동맹국이자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을 ‘문제의 일부’라고 지적하면서 끌어들인 게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군이 대적하고 있는 테러리스트(탈레반)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면서 파키스탄 압박에 나섰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이날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파키스탄이 테러리즘과 맞서 싸우는 데 달려 있다. 우리는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과 관계를 조정할 수 있고, 주요 비(非) 나토(NATO) 동맹국으로서 누려온 특권적 지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그러나 이 역시 세부사항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기존의 미국 정책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불분명해 과거의 실패 경험을 어떻게 극복해 ‘성공’을 이끌어낼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간 개발, 경제지원에 일조해 달라”면서 파키스탄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인도마저 거론한 데 대한 파키스탄 측 반발도 심상치 않다. 무샤히드 후세인 파키스탄 국방위원회 의장은 “주변국인 인도를 아프간에 개입시키겠다는 발상은 아프간 영토에서 파키스탄과 인도가 대리전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탈레반 세력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아프간 내의 ‘복잡성’도 낙관적 전망을 어렵게 한다. 아프간 민족주의 계열인 탈레반은 지난해 8월 기준 영토의 36.6%을 장악한 상황이며, IS 역시 이라크 모술과 시리아 락까에서 근거지를 잃은 뒤, 아프간 동부 지역으로 이동해 점점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으로선 이들을 동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일각에선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IS를 격퇴하기 위해 탈레반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사실 ‘전쟁 확대’라기보단 탈레반과의 ‘협상’이라는 얘기다.
CNN은 “이번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종식을 위한 ‘정치적 해법’을 찾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욕망이며, 여기엔 탈레반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틸러슨 장관이 이날 탈레반을 향해 “당신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이를 거두지 못할지 모르지만(may not win one), 이건 당신들 역시 마찬가지”라면서 사실상 전날 트럼프의 대통령의 발언의 ‘톤 다운’에 나선 것도 이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전문가 대부분은 미국의 완전한 승리를 예상하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면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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