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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동물의 저주

입력
2017.08.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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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 환경 고발한 美 싱클레어 ‘정글’

케이지 사육 문제 지적한 ‘동물 기계’

살충제 계란 낳은 사육 방식 전환해야

‘동물 복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두 권 있다. 한 권은 미국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의 ‘정글’이다. 싱클레어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고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그 어느 것도 1906년 출세작 ‘정글‘의 인기에 비길 바 아니다. 리투아니아 출신 이주노동자 유르기스를 주인공으로 시카고 도축장의 파업을 다룬 이 소설은 도축ㆍ육가공품 제조장의 실상을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서술해 충격을 안겼다. 이런 식이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찌꺼기로 사육되는 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황소 비슷한 놈’이라고 불렀다. 온통 종기로 뒤덮여 차마 황소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도살하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칼로 그런 소를 찌르면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고름이 튀었기 때문이다.” “몇몇 방에는 고기를 산더미같이 쌓아 놓았다. 그러나 말이 창고이지 늘 지붕이 새어 빗물이 떨어지고 쥐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그런 곳이었다. 손으로 고기더미를 휙 쓸어보면 마른 쥐똥이 한 줌씩 묻어 나왔다. 쥐들이 하도 귀찮게 굴어 쥐약을 놓곤 했는데 죽은 쥐와 쥐약 묻은 빵이 고기와 함께 깔때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 소설의 경악할 묘사에 놀란 사람들이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도축ㆍ육가공 공장의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를 수도 없이 보냈다. 그 결과 4개월 만에 미국에서는 육류검역법과 식품의약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나중에 FDA로 바뀌는 화학국이 만들어진다. ‘정글’은 미국문학사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설의 하나로 꼽힌다.

다른 한 권은 영국 사회운동가 루스 해리슨의 ‘동물 기계’다. 일찍이 동물보호 운동에 눈을 뜬 그녀는 1964년 낸 이 책에서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초점은 좁은 철망 속에 가두고 키우는 닭 송아지 돼지, 이른바 케이지 사육 문제였다. 이 책 역시 출간 즉시 영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바로 그 해 영국 정부는 노스웨일스대의 브램블 교수가 이끄는 브램블위원회를 구성해 실태 조사에 나선다. 조사 결과를 종합해 위원회는 이듬해 브램블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거기에는 축산 동물에게 다섯 가지 행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 내용이 들어 있다. 동물 복지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회자되는 ‘가축을 위한 다섯 가지 자유’의 원형이다.

‘동물 기계’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브램블 보고서를 받은 뒤 바로 독립기구로 가축복지조언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위원회는 가축의 복지 향상을 포함한 법안을 제안해 1968년 농업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이런 관심은 영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90년대 유럽연합이 동물권리 조항을 신설하고, 뉴질랜드나 코스타리카에서 동물복지법을 제정한 것은 해리슨의 책에서 시작된 영국의 변화가 낳은 것이다. '살충제 계란'으로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오래 전 금지된 제초제인 DDT까지 검출돼 더 큰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동물 기계’의 서문을 레이철 카슨이 썼다는 것도 눈길이 간다.

케이지 사육은 동물을 괴롭히는 것일 뿐 아니라 결국 인간에게도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던 해리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이 어떤 동물에게 상냥하지 않으면 그건 때로 잔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특히 상업적인 이유로 친절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그다지 잔인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엄청난 돈이 오가는 문제가 되면 지식인마저 끝까지 그 불친절을 옹호할 것이다.”

싱클레어의 ‘정글’은 국내 여러 차례 번역 소개되었지만 금서로 지정되는 비운을 겪었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파업의 정당성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 내용 때문이다. 카슨이 “농업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소비자 반란의 도화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동물 기계’는 출간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국내 번역조차 되지 않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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