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美港)’ 경남 통영시는 소설가 박경리와 현대 음악거장 윤이상 등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하지만 스포츠로 눈을 돌리면 ‘축구 도시’라고도 할만하다. 1960~70년대 한국 축구 수비를 책임졌던 김호(73)와 김호곤(66)을 비롯해 고재욱(66), ‘비운의 축구 천재’ 김종부(52) 그리고 ‘폭격기’라 불렸던 김도훈(47)까지 인구 13만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한국 축구를 주름 잡은 스타들이 여럿 나왔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은 “통영은 예로부터 축구 도시였다. ‘한겨울에도 빤스(팬티)만 입고 운동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따뜻해 수많은 팀들이 찾았던 동계 전훈의 메카였다”고 말했다. 김도훈 이후 한 동안 끊겼던 스타 계보를 이을 재목감이 탄생해 요즘 통영이 다시 시끌시끌하다.
주인공은 ‘신태용호 1기’의 막내인 중앙수비수 김민재(21ㆍ전북 현대)다. 김민재는 오는 31일 이란(홈)-9월 5일 우즈베키스탄(원정)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2연전에 나설 26명의 최종 명단에 포함돼 21일부터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 중이다.
김민재의 부모 김태균-이유선 씨는 통영시 중앙동에서 횟집을 한다. 아들이 생애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던 지난 21일, 이 씨는 5년 전을 떠올렸다. 김민재는 수원공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17세 이하 대표팀에 뽑힌 적이 있다. 소집 날 이른 새벽 아버지는 횟감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에 아들을 태우고 통영에서 새벽에 출발해 7시간 운전 끝에 경기 파주에 도착했다. 이 씨는 “지방에서 온 다른 선수들은 다 전날 올라와 하루 묵은 뒤 여유 있게 들어가더라. 처음이라 잘 몰라 우리만 아들을 고생시켰다. 민재가 파주NFC에 들어가기도 전에 녹초가 돼 마음이 미어졌다”고 했다.
김민재는 팀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는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를 네 번, 중학교를 두 번이나 옮겨 다녔다. 고등학교에서는 안정적으로 운동하고 싶다는 바람에 심사숙고 끝에 박지성(37)의 모교로 잘 알려진 수원공고를 택했다.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던 어머니 덕인지 고교 때 키가 7~8cm 훌쩍 자랐다. 건장한 체격(189cm 88kg)에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연세대 2학년 때 최강희(58) 감독의 눈에 들어 올 시즌 전북에 입단했다. 신인이면서도 국가대표급이 즐비한 전북에서 곧바로 주전을 꿰차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는 올 시즌 전북이 치른 27경기 중 25경기를 뛰었고 이 중 22번이나 풀 타임 활약하며 영플레이어상(신인왕)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김민재가 수상하면 2004년 문민귀(36ㆍ당시 포항) 이후 13년 만에 수비수 출신 신인왕이 탄생한다. 최강희 감독은 김민재에 대해 “기본기가 좋고 긴 패스도 정확하다. 성격도 긍정적이라 좋은 수비수가 될 자질을 두루 갖췄다”고 칭찬했다. 김호곤 부회장도 “요즘은 수비수도 빨라야 한다. 빠른 스피드를 지녀 대성할 재목이다”고 극찬했다.
김민재의 부모는 아들의 주말 홈경기 때는 가게 문을 닫고 전주로 간다. 김민재 보다 한 살 많은 형 김경민도 축구 선수로 명지대 4학년 골키퍼다. 어머니 이 씨는 “두 아들 경기가 열리면 가게 셔터를 내리고 보러 다닌 게 10년이 넘는다. 많을 때는 1주일에 3번 가게 문을 닫을 때도 있었다. 단골손님들은 우리 가게에 오기 전 꼭 전화를 해 문을 열었나 확인 한다”고 웃었다. 김민재가 태극마크를 달자 통영 시내 곳곳에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한국 축구는 홍명보(48) 전 국가대표 감독 이후 간판이라 할 만한 중앙 수비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김민재가 이 숙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그가 지금처럼만 성장해 기둥 수비수가 된다면 그 때는 통영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가 들썩일 것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