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가 도착했다. 이걸 주방까지 옮기는 것만도 큰 일거리다. 꼭 술 취해 늘어진 사람 들쳐 업고 가는 느낌. 난감한데다 진이 빠진다. 문어를 대할 때마다 공격적인 외계 생물체라도 만난 듯 비장해진다. 대가리는 수박만하고 빨판 하나가 어린애 주먹보다도 크다. 색과 무늬가 시시때때로 변하는 껍데기하며, 툭 튀어나온 눈깔하며, 쩍쩍 달라붙는 빨판하며. 반드시 해치워야 할,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 대략 50㎏ 정도 되는 대왕문어를 앞에 두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한다. 먹거리 이전에 한 생명체였으므로.
우선 마사지 시간. 문어 마사지에는 밀가루와 설탕만한 게 없다. 설탕 마사지를 하면 살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는데, 어쨌거나 조금 달콤해지는 기분이 든다. 때론 손가락 끝에 힘을 줘서, 때론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치대고 주무르고 쓰다듬는다. 커다란 빨판이 내 팔뚝을 살짝 꼬집듯 조일 때면 문어와 교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덟 개의 다리. 다리 하나에 5㎏. 셀 수 없이 많은 빨판. 벌써부터 땀 벅벅 기진맥진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삶은 문어 맛의 관건은 식감에 있다고들 한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연하게 탱글탱글한 식감.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쫄깃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식감이라니. 쫄깃과 찔깃 사이, 물컹과 몰캉 사이, 보들과 퍽퍽 사이, 그 사이의 최상의 어떤 식감이라니. 연함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스페인에서는 좀 폭식폭신한 연함을 최고로 친다. 완전히 삶아져서 뭉개지기 직전의 부드러움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덜 삶아져서 쫄깃함을 유지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내야 한다. 둘의 차이를 굳이 육고기와 비교하자면, 갈비찜과 육회의 간극이다.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문어를 맛있게 삶으냐고. 문어를 공급해주는 베테랑 중개인은 끓는 물에 딱 십오 분만 삶으라고 했다. 한 스페인 할머니는 끓는 물에 5분씩 꺼냈다 담갔다를 반복하며 세 번을, 요리선생님은 20분씩 세 번을 삶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는 한 시간 이상, 또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서른세 번 벽에 내동댕이친 다음 한 시간, 또 누군가는 하루를 얼렸다가 삶는다고도 했다. 대략 따라 해 봤다. 서른세 번이 아니라 마흔다섯 번 벽에 던져도 보았다. 부드럽기는커녕 질기다 못해 뻣뻣해졌다. 최상의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대략 비슷한 식감을 만들어 볼 뿐.
일단 하루 정도 냉동실에 넣어둔다. 삶기 전에 자숙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속까지 완전히 얼지 않고 표면만 살짝 언 상태다. 이걸 다시 녹이는 데에는 실온에 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본격적인 문어 삶기 시간. 다른 건 필요가 없다. 무 한 덩이 정도. 물은 충분히 넉넉하게. 팔팔 끓인다. 끓는 물에 5분. 넣었다 빼고 넣었다 빼고를 세 번. 다시 물이 팔팔 끓기를 기다렸다가 완전 입수. 그 상태로 40분에서 한 시간 이상 끓인다. 물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가끔 불 조절도 해 가면서. 이러다가 너무 질겨지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은 지우고 시간을 채운다. 시간을 채웠으면 불을 끄고 기다린다. 물이 식을 때까지 그 속에 그대로 반나절 뜸을 들인다. 식은 문어를 체에 받쳐 물기를 다 뺄 때까지 또 반나절. 이걸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으면 끝. 이제 정말 끝이다. 이걸로 샐러드를 해먹든 삶은 감자에 올리브유와 파프리카 가루를 듬뿍 뿌려 먹든, 그건 다음 문제다. 여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문어와 보낸 이틀. 길고 긴 전투를 끝낸 기분이다. 아 이 애증의 문어 삶기. 삶은 문어가 뭐라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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