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공간-사람] 시리즈
경기도 용인시 에이하우스
규제 때문에 만든 박공 지붕에
과감하게 개구부 3개를 뚷어
햇빛 들어오는 입구로 만들고
기하학적 아름다움도 살려
이탈리아 권위 있는 디자인상 은메달
대부분의 사람에게 집 짓기는 평생 딱 한 번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 감정이 소요되지만 그 한 번이 성공할 거란 보장은 없다. 경기 용인시 낮은 산자락에 자리한 에이하우스는 은퇴 후 전원 생활을 꿈꾸던 50대 부부의 두 번째 집이다. 판교에 첫 집을 지었던 이들은 용인으로 옮겨 다시 내 집 짓기에 도전했다. 햇볕을 좇아서다.
햇볕을 따라 지은 두 번째 집
에이하우스 건축주는 ‘판교 1호 입주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는 일찌감치 전원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판교에 단독주택 열풍이 불던 시기에 가장 먼저 내려가 집을 지었다. 그러나 생애 처음 지은 내 집은 마음 같지만은 않았다.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설계자에게 다 맡겼죠. 그런데 아파트에서만 살아 그런지 단독주택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집 면적이 50평이 넘어도 계단실이니 뭐니 빼고 나니 아파트의 50평과는 비교할 수 없더군요. 무엇보다 정남향인데도 해가 잘 안 들었어요. 기역(ㄱ)자로 꺾인 집인데 오후 한 시만 지나도 볕이 안 들어 그게 늘 아쉬웠습니다.” 판교의 집을 팔고 용인에서 두 번째 집을 지을 때, 그가 바라는 바는 명확했다. 넓은 집, 그리고 햇볕이 가득한 집이었다.
에이하우스가 있는 땅은 부동산 회사에서 개발해 분양한 단독주택 단지라 교통이나 조망 면에서 손색이 없었다. 북쪽으론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 수 있게 땅을 인공적으로 3m 가량 돋워놔 남쪽으론 햇볕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좋은 입지였다. 여기에 면적 304㎡(약 92평)의 네모 반듯한 땅이니 그냥 건물을 세우기만 해도 건축주의 요구는 어느 정도 충족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역엔 개발필지에 대한 특이한 규정이 있었다. 주택 외관이 들쭉날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면적의 70% 이상을 반드시 경사지붕으로 하도록 한 것. 설계를 맡은 이창규(건축사무소 GEBDESIGN) 건축가는 규제와 디자인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지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집들이 규제에 맞춰 경사지붕과 평지붕을 조합한 형태더군요. 문제는 건축주가 경사지붕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에 의뢰 받은 집은 네모 반듯한 정육면체에, 옥상이 있고 남쪽으로 균일하게 창을 낸 깔끔한 디자인이었어요.”
건축가는 절충 대신 정면돌파를 택했다. 양쪽이 똑같이 경사지붕으로 내려오는 박공지붕을 택한 것이다. “70%라는 규제에 맞춰 디자인을 결정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주변 집들과 차별화 되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건축주가 정육면체에서 떠올린 게 순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라면 박공지붕으로도 그걸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쪽에서 본 에이하우스는 컴퓨터 아이콘처럼 전형적인 집 모양이다. 군더더기 없는 새하얀 오각형과 그 위에 찍듯이 낸 정사각형의 작은 창은 기하학적 조형미를 극대화한다. “이웃 집과의 법정거리가 2m 밖에 안 됩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동서쪽엔 최소한의 환기를 위한 창만 작게 내고, 대신 햇볕을 받아야 하는 남쪽을 활짝 열었습니다.”
집 안 모든 곳에 빛이 닿도록
햇볕을 좇아 온 여기까지 온 만큼 남쪽은 특별해야 했다. 일단 남쪽에 거실과 방을 전면 배치하고 북쪽으론 화장실, 부엌, 드레스룸을 두었다. 거실이 있는 1층은 현관 쪽을 제외한 전면에 시원하게 창을 냈다. 문제는 2층과 다락층이었다. 지대가 높아 안이 들여다 보일 염려가 없으니 창을 크게 만들고 다락엔 천창을 내면 될 일이지만, 건축가는 한번 더 반전을 시도했다. 남쪽 지붕 경사면에 과감하게 3개의 개구부를 뚫어 가운데 중층 테라스를 만든 것. 규제에서 출발한 박공지붕이 오히려 햇살을 들이는 입구로 바뀐 순간이다.
“건축주가 원한 건 집의 모든 곳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빛이 닿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창을 크게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테라스 쪽에 2, 3층을 연결하는 통창을 달고 1층 천장 일부를 개방했습니다. 빛이 3층부터 1층까지 아래로 부딪히면서 떨어져 모든 공간에 닿도록 한 거죠.”
테라스를 위해 실내 면적 일부를 양보했지만, 외부공간은 건축주가 애초에 원했던 평지붕 옥상처럼 쓸 수 있게 됐다. 2층의 양쪽 방을 연결하는 테라스는 거의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는 손주들 차지다. 여름에는 고무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엔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곳이다.
3개의 개구부 중 양쪽 2개는 다락층의 테라스다. 2층 테라스가 떠들썩한 가족 공간이라면 이곳은 건축주의 조용한 취미실로 쓰인다. 산악자전거와 리컴번트 바이크(누워서 타는 자전거), 취미로 하는 목공 작업 재료들이 잔뜩 쌓여 있다. 건축주는 “한가해지면 하려고 벼르고 있는데 바빠서 손도 못 댔다”며 웃었다.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면 집이 더울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론 안 그래요. 뚫어놓은 1층 천장으로 더운 공기가 다 올라가서 굉장히 시원합니다. 여길 통해 위층에 있는 손주들을 부를 수도 있죠.”
집 안에 가득한 햇빛은 계단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건축가는 흔히 쓰는 재료인 유리나 철제 대신 석고를 이용해 막힌 난간을 만들었다. 집 뒤쪽에 대형 조각처럼 세워진 백색의 난간은 남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해 사방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흔히 개방감을 위해 유리나 살을 쓰지만 빛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흰색의 재료를 썼습니다. 계단 뒤엔 1층부터 3층까지 아우르는 긴 창을 내 북쪽 산의 풍광을 담았어요.”
법적 규제를 기하학적 디자인과 채광의 극대화로 풀어낸 에이하우스는, 올해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에이디자인어워드(A’ Design Award)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건축가는 에이하우스가 “마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인=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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