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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깎든지 말든지… 남의 겨털에 참견 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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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깎든지 말든지… 남의 겨털에 참견 마슈!

입력
2017.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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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서 누가 찍을까 걱정

별난사람ㆍ혐오대상 될까 불안

그래도 면도 안하니 편하고 좋아

남자들은 전혀 관리 안하면서

‘여자가 왜 제모도 안하냐’ 타박

사적부분 왈가왈부 이젠 그만

최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출근길에서 겪은 한 여성의 황당한 이야기가 한창 화제를 일으켰다. 이야기는 이렇다. 출근길 버스에서 여자가 졸다가 잠에서 깼는데 자기 겨드랑이에서 털이 삐져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란 여자는 삐져 나온 털을 자기 겨드랑이로 마구 밀어 넣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자가 마구 밀어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옆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이었다. 일부는 이 이야기를 우습다는 것으로 간단히 넘어갔지만, “한국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은 없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겨털 살롱’ 멤버들이 그들 중 하나다. 겨털 살롱은 한 번쯤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고 민소매 옷을 입고 싶은, ‘여자의 겨드랑이는 털 없이 매끈해야 한다’는 갑갑한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고픈, 여성들의 모임이다. 20일 한국일보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겨털 살롱 기획자인 월간퇴사 편집장 곽승희(31)씨, 마인드트립 대표 이현정(40)씨, 대학원생 오지예(27)씨, 독립연구자 우성희(35)씨를 만났다. 그들이 던지는 솔직 대담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겨털 살롱 멤버인 곽승희씨(왼쪽부터), 이현정씨, 오지예씨. 홍인기 기자
겨털 살롱 멤버인 곽승희씨(왼쪽부터), 이현정씨, 오지예씨. 홍인기 기자

겨드랑이 털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곽승희씨(곽)=어떤 사건 때문에 충격받아서 결정한 건 아니에요. 여자니까 털을 제거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여자니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겹게 다가왔어요. 심지어 레이저 제모를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모근이 남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밀어보지 말자'고 결심하고 올해에 이르렀죠.

이현정씨(이)=겨드랑이 털 제모, 다리 털 제모, 브래지어까지 모두 저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와요. 브래지어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한 여름에 여자는 브래지어 입고 이거 안 보이려고 속옷 입고 그 위에 옷을 입죠. 너무 답답해요. 겨드랑이 털과 다리 털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면도를 했어야만 했죠. 심지어 면도를 안 했을 때는 긴 옷을 입어야지 치마를 입지는 않았어요. 심지어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탓할 때도 있었죠. 그러던 찰나에 이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남 셈이죠.

오지예씨(오)=저는 겨드랑이 털을 제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게 됐어요. 여드름이 많이 나 피부과를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레이저 시술’ 얘기를 꺼내면서 “이 참에 피부 관리에 레이저 시술까지 하면 겨드랑이 털 관리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겨드랑이 털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했죠. 그런데 제가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캐나다에 1년 연수를 가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저한테 같이 그냥 수영장 갈 일 있는데 제가 “제모를 안 했기 때문에 못 간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줌마가 “나도 안 했다”고 겨드랑이를 들어서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갔어요. 그때 신선한 충격이었죠. 저는 그때부터 안 해요.

우성희씨(우)=저는 아무도 “제모하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겨드랑이 털을 꼭 밀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죠.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누가(남학생) 너 겨드랑이 냄새가 난데, 겨드랑이 제모 안 해?”라고 물어왔어요. 그때 충격을 받았죠.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의 이런 부분까지 얘기하는구나.‘ 그래서 그때 겨드랑이 털을 밀어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알게 됐지만. 그래도 신경은 안 썼어요.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곽=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셨죠. 언제가는 “넌 ‘신여성’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제가 겨털 살롱을 기획한다는 걸 보시고는 “요즘 애들은 밀지 않니?”라고 물어 보시기도 하구요. 그런데 길에서는 딱히 제가 겨드랑이 털을 기른 것을 보고 반응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어요. 물론 겨드랑이 털 없는 게 ‘기본’이니 ‘없겠거니’ 했을 수도 있어요.

일동=맞아요. 맞아요.

우=당연히 없는 걸 기르게 되니까, 오히려 더 예쁘게 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깎지도 않고 덜 꾸미고 나오면 왠지 모르게 자꾸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사람들도 한 번씩 툭툭 치고 가는 거 같다는 그런 기분이요.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성들의 모임인 '겨털 살롱' 회원들이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거울로 비춰보고 있다. 겨털 살롱 제공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성들의 모임인 '겨털 살롱' 회원들이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거울로 비춰보고 있다. 겨털 살롱 제공

정말 털을 꾸미지 않았다고 그랬을까요?

우=물론 아닐 수도 있죠. 결국 이렇게 저 스스로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다’라는 사회적 고정관념대로 저를 보고 있는 거죠. 아직은 겨드랑이 털을 깎는 게 ‘정상’이니까요. 여기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 오는 두려움 같은 게 분명히 있죠

이=저는 그래서 여자가 갖는 ‘두려움’의 정체가 뭔지 알고 싶어요. 겨드랑이 털을 보고 불쾌하다면 불쾌함의 정체는 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있잖아요.

곽=제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해요. 누가 내 겨드랑이 보고 폭행이나 그런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별일 없어서 그냥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지만, 겨드랑이 털 드러내고 대중교통 이용하는데 인터넷이나 SNS에 '나 오늘 이런 사람 봤어'라며 제 사진이 올라올까, 그걸 사람들이 보면서 이런저런 말을 할까 이런 걱정을 할 때도 있어요.

우=별난 사람 취급 당해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 거 같아요.

여성들은 겨드랑이 털 하나 기르는 걸로 이런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남성들은 ‘털’과 관련해서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거 같네요

이=남자들은 좀 달라요. 여성과 달리 그들은 패션와 뷰티 센스의 영역이에요. 남자는 특히 겨드랑이 털이 보인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잖아요. 대신 털이 좀 정돈돼 있거나 아예 없으면 ‘가꾸는’ 사람이 되는 거죠. 반면 여자는 겨드랑이 털이 없어야 ‘정상’이고 있으면 ‘비정상’이 돼 버리는 거죠.

우=그렇죠. 남자는 제모하면 꾸미는 사람이 돼요. 물론 꾸미지 않아도, 겨드랑이 털을 관리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받는 타격은 없어요. 겨드랑이 털 제모가 자유로운 선택의 영역에 있는 거죠.

우=중국에 잠시 있으면서 굉장히 좋은 태도를 배웠어요. 중국인들은 남 신경 안 쓴다고 하는데, 겨드랑이 털을 관리하지 않는 여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굉장히 당당해요. ‘내가 겨드랑이 털을 깎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가 느껴져요.

곽=결국 한국에서 여자들도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고 싶으면 제모하는 거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싶으면 가만히 내버려 두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어요. 내 털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그런 상황이요.

오=맞아요. 결국 겨드랑이 털은 제 사적인 부분이잖아요. 그런 거를 남들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공부하는 친구들 보면, 이런 사회에서 겨드랑이 털을 기르겠다고 했다가 밀고 있는 자신을 보면 힘들다고 해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요. 자르고 싶으면 자르는 거예요. 그러다 또 방치하고 싶으면 방치하고. 그런 자유 정도는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겨털 살롱 기획자 곽승희씨가 팔을 들어 지난해 여름부터 기른 겨드랑이 털을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겨털 살롱 기획자 곽승희씨가 팔을 들어 지난해 여름부터 기른 겨드랑이 털을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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