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ㆍ중과 군사적 힘겨루기 상황에
태평양함대 올해 4차례 사고
훈련 부족 등 대대적 점검 위해
전례 없이 모든 작전활동 중단
일각선 해킹 가능성 제기
중 “미국 거만해서 사고 나” 조롱
미국 해군이 전 세계 해상을 누비는 자국 함정들을 전부 멈춰 세웠다. 2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이지스 구축함 충돌 등 최첨단 함정들의 사고가 잇따르면서 원인 규명은 물론, 선체 결함 및 훈련 적절성 등 함정 운용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핵 도발과 중국과의 군사적 힘겨루기가 점증하는 현실을 감안해 더 이상 구조적 문제들을 방치했다간 세계 최강의 해군력 신뢰도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존 리처드슨 미 해군 참모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전 세계 해상에서 활동 중인 모든 함정에 일시 작전 중단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성명은 제7함대 소속 존 S. 매케인함이 말라카해협에서 싱가포르 유조선 알닉 MC와 충돌 사고를 낸 지 몇 시간 뒤 나왔다. 그는 “이런 사고는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보다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해군이 특정 함정의 문제점 파악을 이유로 작전활동 자체를 잠정 중단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활동 정지 기간은 하루 이틀 정도로 예상된다.
해군은 특히 지휘 혼란과 훈련 부족, 안전 불감증 등 미숙한 함정 관리체계가 충돌을 야기한 것은 아닌지 면밀히 들여다 볼 계획이다. 올 들어 발생한 4차례 이지스 군함 사고의 관할 해역이 모두 태평양이기 때문이다. 해양 군사전문가인 스티브 겐야드 전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대서양이나 지중해에서는 유사 사고가 전혀 없었다”며 “태평양함대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매케인함 사고는 인재(人災)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통상 전투함은 첨단장비를 구비했더라도 충돌 방지를 위해 갑판에 보초병을 세우고 조종장치ㆍ엔진 이상에 대비한 인력이 상시 대기한다. 항해 중 항로 안전과 관련한 정기 브리핑도 실시한다. 해군 제독 출신인 버나드 콜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말라카해협처럼 복잡한 항로를 통과할 때는 장교 2명을 포함해 6명의 승조원을 갑판에 따로 배치한다”며 이들이 충돌회피 조치를 누락했을 수 있다고 봤다. CNN방송은 “사고 전 함정 조종장치에 문제가 생겼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상업용 선박들이 자동 조종장치 등 통합 안전시스템을 갖춘 점도 매케인함의 부주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독일 보험업체 알리안츠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17건이었던 대형 선박간 충돌 사고는 지난해 1건에 불과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해양프로그램 책임자 해리 볼턴은 “이번 사고는 승조원들의 훈련 부족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휘관의 위기 대응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총장 역시 “이지스함 사고에 외부세력이 개입하거나 의도적 충돌로 볼 징후는 없다”며 내부 원인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일본에 배치된 7함대 함정들은 본토에 모항을 둔 함정들보다 훈련량이 적은 반면 출동 횟수는 더 많아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등이 이지스함 시스템을 해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
해군이 재빨리 전방위 수습책을 발표한 데에는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의도가 엿보인다. 이번 사고는 하필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 중이자 지배력 확대를 놓고 미국과 으르렁거리는 남중국해 인근 해역에서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전투태세와 내부 관리가 점점 망가지고 있다(글로벌타임스)” “미군의 거만한 태도가 사고 원인(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미 해군의 부실한 시스템을 한껏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 패권을 놓고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며 함정 사고가 해양 주도권 다툼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매케인함 충돌 당시 실종된 10명에 대한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중 일부로 추정되는 수병들의 시신 몇 구가 선실 등에서 발견됐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