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내 본능은 미군 철수지만
백악관에서 달라야…자세히 공부”
아프간에 4000명 추가 파병 전망
한반도서 대응능력엔 별 영향 없어
“직업군인 참모들의 조언 신임”
북핵에 강경 노선 고수 가능성 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평생을 믿어온 자신의 ‘본능’ 대신,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좇아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미 언론에 따르면 약 4,000명의 추가 파병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버지니아 주 알링턴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전국에 생중계된 TV연설을 통해 새로운 아프간 전쟁 전략을 공표하며 “아프간과 광범위한 주변 지역에서 직면한 안보위협이 엄청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또 “내 본능은 (미군) 철수였고 나는 본능을 따르기를 좋아하지만, 백악관 책상에 앉으면 달라야 한다는 얘기에 따라 모든 각도에서 자세히 공부했다"고 강조했다.
며칠 전까지 대북 ‘핵 공격’ 위협까지 서슴지 않던 트럼프 정권이 돌연 아프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날 결정이 안보정책 우선 순위의 변경으로도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 전역이 작전권역인 미군의 전투능력과 아프간 증파결정에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감안하면 외교ㆍ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도 군사적 대응을 배제하지 않는 기존 대북 정책에서의 이탈은 없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의 중론이다.
먼저 군사적 측면에서 아프간으로의 4,000명가량 증파는 한반도에서 미국 대응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한 미국의 재건’,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국방비를 올해보다 10% 증액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관계자는 “아프간 병력 증원에 따른 미군의 역량 분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업군인 전문가 그룹 조언에 고집을 꺾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군사 대응 가능성을 배제하고 주한미군 철수 협상을 얘기하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퇴출되면서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이 ‘고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프간에 대한 ‘개입’이 강화된 사실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질 여지를 넓힌 것으로 해석된다. 고립주의를 주도한 배넌과 대척점에 섰던 현역 육군 중장인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등 참모들에 트럼프 대통령이 신임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대북 강경기조 유지 가능성을 높인다. 뉴욕타임스는 “맥매스터 보좌관 등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과거 미국 행정부와는 달리 대북 예방전쟁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안팎에서 공격을 당한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충격적인 ‘말 폭탄’을 던지는 일은 크게 줄어들 수 있어도, 유사시 군사 압박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프간 신 전략이 아프간 전쟁은 물론 북한 문제를 다룬 18일 캠프데이비드 안보회의를 통해 결정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한 번도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공세적이며 개입 확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잡으며 북한문제 대응 수위도 자연히 올라갈 개연성이 커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결정을 정치적 위기 타개를 위해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는 영웅들을 본받아, 우리는 단결하고 서로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인종주의’ 발언으로 미국내에서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대외 군사행동에 나선 점에 주목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30여분 간 연설 중 ‘승리(win)’와 ‘투쟁(fight)’라는 단어를 모두 14차례나 내뱉으며 공격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북핵 대응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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