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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아직 20년 남짓 시간이 있다

입력
2017.08.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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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년이면 양서류의 41%, 조류의 13%, 포유류의 25%가 멸종할 것이다.”

201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21명의 과학자가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 실린 문장이다. 이것을 읽고서 심각해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쳇, 근근이 살아가는 내가 저 동물들까지 염려할 틈은 없어”라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을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그래 심각한 것은 알겠는데, 아무리 염려한들 내가 뭘 어쩌겠는가”라는 무력감이 깔려 있다.

“최근 기온 상승의 결과로 몇 십 년 후면 1만4,000년 전 기온에 도달합니다. 인류는 이런 기온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또 전 세계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해서 내가 사는 동안에만 세 배나 증가했어요. 늘어나는 인구는 식량을 필요로 해요.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말이죠. 앞으로 일어날 큰 문제는 자원의 극단적 결핍이에요. 특히 물 같은 경우는 지구적 변화를 가져올 심각한 문제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물을 찾아 이동할 거고 그러면 자원을 가진 이들과 충돌하게 되죠. 세계 각지 사람들 사이에 증오가 생겨날 거예요. 전쟁이 뒤따르겠군요. 시간이 없어요. 어쩌면 20년쯤 남았을 겁니다.” 논문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고생물학자 토니 바르노스키의 말이다.

수천~수만 년이 아니라 20년 남짓이라면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무관심하기에는, 내가 뭘 어쩌겠냐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미래가 아닌가 말이다. 오죽하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하다못해 국정을 농단하도록 방치하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마저 2015년 파리 기후정상회의로 모였을까.

‘네이처’ 논문은 파리를 비롯한 세계 시민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뭔가 해야겠다. 인간이 일으킨 일이라면 인간이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미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을 찾아가서 해결책을 모아보자.” 프랑스의 젊은 영화인 몇 명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세계 시민 1만266명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투자했다. 기후정상회의 직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내일(demain)’이 바로 그 결과물.

‘내일’은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명랑하다. 위험을 경고하는 게 아니라 멋진 해결책을 신나게 보여주는 영화다. 다섯 가지 주제가 이어진다. 첫 번째는 농업이다. 영화 제작진은 전 세계를 다니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해결책들을 퍼즐처럼 맞췄더니 모든 것은 밥에서 시작되는 걸 알았다. 시민이 농민이 되는 새로운 문화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1960년 이후 200만의 인구가 60만으로 줄어든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자 도시도 쇠락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찾을 수 없게 된 시민들은 직접 먹거리를 키우기로 했다. 이곳의 시민활동가는 말한다. “우리는 아주 대담한 목표를 갖고 있어요. 식량주권 도시로 만드는 것이죠.” 성공 사례는 유럽에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들은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다. 도시농업이 농촌농업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두 번째 주제는 신재생 에너지다.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기후 변화가 두려운 것은 지구의 물 순환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게 문제의 핵심이에요. 지구의 모든 것이 물에 달렸거든요.” ‘내일’은 아이슬란드 스웨덴 덴마크 독일의 성공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전략은 어디에나 있는 바람, 태양, 지열을 사용하는 것이다. 수백만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수평적 경제 속에서 에너지를 모으면 그 힘은 핵발전소를 능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세 번째 주제는 돈이다. 시민활동가들은 잘 알고 있다. 돈이 제일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내일’은 지역화폐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중앙화폐와 병행하는 돈이다. 식량과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는 시민들은 경제 일부를 지역경제로 전환시켰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주제는 교육과 민주주의다. 교육과 민주주의는 모든 것의 중심이다

우리는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그 결과로 동굴 같은 침침한 곳에서 썩은 감자나 먹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일’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즐겁게 힘써 노동하며 깨끗한 물과 먹거리를 소비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성공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 세계에 석유 없는 세상을 준비하는 1,200개의 전환도시가 있고 수천 개의 도시 농장과 4,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다. 구입하기보다는 나누고 에너지를 만들며 나무를 심고 탄소를 포집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과 달리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원인은 우리 인류가 일으킨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일으킨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계가 하루아침에 변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해결책은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 일단 영화 ‘내일’을 보자. 아직 우리에게는 20년 남짓한 시간이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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