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영국이었다면 명배우 숀 코너리와 앤서니 홉킨스처럼 왕실 기사 작위를 받고도 남았을 법한 ‘예술적 성취’다. 언제나 위대했음에도 매번 새롭게 위대해지는 배우, ‘연기 괴물’ 송강호(50)에 대한 얘기다.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올해 첫 번째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괴물’(2006)과 ‘변호인’(2013)에 이어 세 번째 1,000만 돌파다. 주연작으로 ‘트리플 천만’은 송강호가 유일하다. ‘설국열차’(2013ㆍ930만명)와 ‘관상’(2013ㆍ913만명)이 1,000만에 근접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체감 흥행은 그 이상이다. 여기에 ‘사도’(2014ㆍ624만명)와 ‘밀정’(2016ㆍ750만명)까지 더해 송강호 출연작의 누적관객수는 이미 1억명을 훌쩍 넘겼다.
송강호의 시대 20년
송강호의 이름이 한국영화에 등장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단관극장 체제가 멀티플렉스로 재편되고, 필름에서 디지털로 상영방식이 바뀌었어도 그는 여전히 스크린 최강자다. 숱한 스타들이 명멸하는 충무로에서 한결같이 전성기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단역으로 영화를 시작한 그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진짜 깡패를 데려와 연기를 시킨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실감나는 깡패 연기를 선보였다. 같은 해 개봉한 ‘넘버3’에서 삼류 깡패 조필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배배배신이야”를 외치며 헝그리 정신을 설파하는 장면은 ‘송강호 신화’의 신호탄이 됐다.
너무나 강렬했던 두 영화로 코미디 배우 또는 감초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질 뻔했던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을 만나 ‘연기 괴물’의 면모를 드러낸다. 김 감독의 ‘반칙왕’(2000)에서 첫 주연을 맡아 한 작품을 오롯이 끌고 가는 역량을 입증했고,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국내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충무로 간판이 됐다. 봉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3)에서 525만 흥행을, ‘괴물’에서 1,300만 흥행을 합작했다. 박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2002)과 ‘박쥐’(2009)에서 송강호의 얼굴을 서늘하게 변주했고, 김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9)으로 맛깔스러운 캐릭터를 그에게 선사했다.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수작들이 그의 연기로 빚어졌다.
역사를 관통하는 소시민의 얼굴
송강호는 스크린 안에서 소시민의 대변자가 될 때 유독 크게 공명했다. 소시민의 생활 정서를 그려내는 데 그를 능가할 배우는 없다. 그는 답답한 현실에 ‘헤드락’을 건 소심한 샐러리맨(‘반칙왕’)이었고, 1960~8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묵묵히 견뎌낸 순박한 이발사(‘효자동 이발사’ㆍ2004)였으며, 괴생물에 납치된 딸을 구하려 애쓰는, 조금은 모자란 아버지(‘괴물’)이기도 했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살인의 추억’)일 때도 생활감이 물씬했던 그는 조폭영화에서조차 가족을 위해 폭력조직 생활을 하는 평범한 가장(‘우아한 세계’ㆍ2007)을 그렸다. 희극인 듯하지만 결국엔 삶의 비극과 마주하는 송강호의 ‘인물들’은 짙은 페이소스로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송강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과 정서를 특유의 뉘앙스와 노련한 완급조절로 설득해낸다”고 평했다.
2013년부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시대 정신을 한층 깊숙이 흡수한다. 거대한 격랑에 휘말린 소시민의 각성과 분투는 그대로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아들을 위해 역모를 막으려 했던 관상가(‘관상’)와, 부당한 권력에 상식으로 맞서며 인권에 눈을 뜬 변호사(‘변호인’)는 시대의 야만을 폭로했다. ‘밀정’(2016)의 이중첩자 이정출은 하염없이 흔들리다 신념을 갖게 되는 인물이었고, ‘택시운전사’의 김만섭은 밀린 월세를 벌기 위해 광주로 갔다가 시대의 목격자로 거듭난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설국열차’에서도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을 이끈 혁명가였다. 송강호의 얼굴은 한 시대를 관통하며 소시민을 역사의 주체로 끌어올렸다. ‘변호인’과 ‘밀정’을 제작한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송강호가 시대극에 특화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연기가 워낙 공감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시대극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송강호의 영화
송강호는 “연기할 때 ‘어떻게 잘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변호인’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염려해 주변에선 ‘택시운전사’ 출연을 말렸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는 또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영화들이 모여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세상도 조금씩 바뀌지 않겠냐”(JTBC ‘뉴스룸’ 인터뷰)고도 말했다. 그가 의도했건 안 했건, 그의 선택은 한국영화 지형도를 바꾸고, 관객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택시운전사’도 그런 영화다. 1980년 5월,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와 함께 광주로 내려가 항쟁의 물결에 휩쓸린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은 37년 전 비극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렸다. ‘택시운전사’의 흥행엔 무엇보다 송강호의 힘이 컸다는 데 이견이 없다. “송강호의 존재감은 영화의 소재보다 강력하다”(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평가까지 나온다.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는 “영화 속 송강호는 1980년대의 얼굴로 지금 이 시대를 얘기한다”며 “영화에 담기지 못한 송강호의 여러 다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건 현장 영화인의 복이자 영화를 만드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클로즈업 화면에 담긴 송강호의 얼굴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살인 용의자를 놓아주며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무기력하게 읊조릴 때(‘살인의 추억’), “국가는 국민”이라고 사자후를 터뜨릴 때(‘변호인’),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며 운전대를 돌릴 때(‘택시운전사’),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에게 밀착한다. 김형석 저널리스트는 “송강호는 연출의 결함까지 연기로 극복해낸다”며 “이야기가 혼란스러울수록 그의 클로즈업 표정이 빛을 발한다”고 분석했다.
송강호는 여전히 현재형 배우다. 김형석 저널리스트는 “송강호는 아직 50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배우”라며 “그가 완성형 배우가 아니기에 앞으로도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원 대표도 “‘변호인’ 이후 자신에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가 이제는 부담을 내려놓고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관객들도 배려와 예우를 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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