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갈등리포트] 짓지도 못하고, 지어도 못가고… 대학생들 ‘기숙사 울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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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짓지도 못하고, 지어도 못가고… 대학생들 ‘기숙사 울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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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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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학가 ‘기숙사 전쟁’

“대학가에서 사람이 숨 쉬고 살 만큼 공간이 확보되고 채광이 괜찮은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은 줘야 해요. 관리가 엉망인 곳도 많은데 부르는 게 값이어서 중개업소를 갈 때마다 놀라요.”

지난 17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사거리에서 인근 삼거리 일대의 부동산 중개업소 7곳을 돌며 원룸 시세를 알아보던 손모(48ㆍ여)씨는 가격까지 마음에 드는 방은 찾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온 그는 한양대에 다니는 딸(21)이 묵을 방을 2학기 개강 전 급히 찾는 중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월 45만원에 19.8㎡짜리 방을 계약하기로 마음 먹었다. 손씨는 “방세를 내려면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할 텐데 기숙사만 있어도 이렇게 집 보러 다니고 돈 걱정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갈수록 치솟는 대학가 자취방 월세 탓에 대학생과 학부모의 시름이 깊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서울 대학가 원룸 월세는 평균 50만원에 달해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가 없다. 대학들의 민자 기숙사는 원룸 시세와 맞먹고,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학 기숙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를 해결하려 정부의 독려 속에서 대학들이 기숙사 신축에 나섰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 등에 발목이 잡혀 공사는 진척이 없고, 대학생과 학부모만 애태우고 있다.

경희대 서울캠퍼스 운동장 내에 완공된 행복기숙사. 시공사 관계자가 완공된 기숙사를 촬영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학교 땅에 기숙자 짓는데 주민이 무슨 상관?

국내 대학들은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일수록, 또 집값이 비싼 수도권에 위치할수록 오히려 기숙사 수용률이 떨어진다. 더 필요한 곳에 더 적은 셈이다.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대학 238곳의 기숙사 수용률은 20.3%인데, 국공립대(23.1%)가 사립대(19.4%)보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 또 비수도권(23.9%)에 비해 수도권(15.0%)의 수용률이 현저히 낮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행복기숙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 학사, 대학생전세임대주택 등을 포함해도 기숙사 수용률은 전국 평균 22.5%에 불과하다.

손씨의 딸이 다니는 한양대 서울캠퍼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양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1.5%. 학생 10명 중 1명만 입실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부족한 기숙사를 확충하기 위해 한양대는 2015년 학교 부지 안에 외국인 학생 전용 6기숙사(540명 수용)와 국내 학생 전용 7기숙사(1,450명)를 직영으로 짓는 신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사실상 표류된 상태다.

대학 안에 기숙사를 짓는 것인데 왜 주민 반발이 문제가 되는 걸까. 기숙사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부칙 제15조에 따라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도시계획시설을 지으려면 국토계획법 제88조에 따라 시의원과 공무원,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시의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고 구에서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양대는 이를 위해 지난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지만, 올 6월 ‘심의 보류’가 결정됐다. 이 같은 결정에는 원룸을 운영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영향을 끼쳤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한양대기숙사건립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원룸 공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학교와 지자체에 민원을 넣고 반대해왔다. 서울시의 심의 보류가 결정된 후 한양대 총학생회는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등 항의하고 있어 주민과 학생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양상이다. 방준효 서울시 시설계획과 팀장은 “주민들의 민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민원 때문에 심의가 보류된 건 아니다”며 “기숙사가 애초 언덕이 있는 높은 지역에 계획됐는데 직사각형 건물이 들어서면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위원들의 의견이 있어 주변 스카이라인을 고려한 안을 다시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주민들은 투표권자지만 주소지를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주민들의 반발 여론에 더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려대도 4년 전 서울 성북구 개운산 내 학교 부지에 1,10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세웠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진척이 없다. 개운산 부지는 사유지이지만 기숙사를 짓기 위해선 산지관리법 제15조에 따라 지자체장으로부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려대는 2014년 8월 근린공원으로 묶여 있던 해당 땅에 대한 토지용도 변경신청을 성북구청에 냈지만, 해당 지역을 ‘게이트볼 연습장’ 등으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공원 내 산림 파괴를 우려해 민원을 제기하는 등 반대해왔다.

3년째 제자리 걸음인 기숙사 신축 계획에 속이 타는 건 학생들이다. 이승준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공원에 짓는 기숙사인 만큼 학교가 주민들의 체육시설을 보장하고 녹지를 복원하는 등의 방안도 내놨지만 여전히 일부 주민들은 환경 보존을 빙자한 원룸 공실 발생을 우려해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고 있다”며 “성북구청은 유권자인 주민 눈치 살피기에만 바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병완 성북구 공원녹지과 팀장은 “학생들 입장에선 기숙사가 필요시설이지만 도시공원도 지역주민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재 시설이어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희대 역시 운동장 부지에 기숙사 건물을 다 지었지만, 동대문구청이 ‘교통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신청하라고 통보하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8일 경희대 학생 30여명이 서울 동대문구청 앞에서 신축기숙사 사용허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희대 총학생회 제공

민자기숙사 있는 25개 사립대, 차라리 월세가 싸다

기숙사가 운영되고 있는 곳도 사실상 기숙사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비싼 곳들이 많다. 원룸 월세보다 비용이 비싼 ‘민자 기숙사’ 탓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25개 사립대에서 민자기숙사 41동이 운영되고 있다. 사립대 민자기숙사 1인실 한달 이용료는 연세대 SK국제학사가 65만5,000원, 고려대 프런티어관 59만5,000원, 건국대 민자1·2 학사가 각각 58만5,000원 등이다. 연세대 기숙사 1인실을 1년간 사용하면 786만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737만원)보다 높다. 직영을 포함한 사립대 전체 기숙사의 한달 평균 1인실 사용료가 32만원인걸 감안하면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애초에 민자기숙사 설립도 기숙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려는 고민에서 시작된 정책이었다. 2005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개정해 민간 자본으로 캠퍼스 안에 기숙사를 짓고 사업비를 회수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제도 도입 후 대학은 건축적립금을 사용하지 않고 민간 자본을 이용해 기숙사를 지을 수 있고, 민자기숙사를 운영하는 특수목적회사(SPC)는 공실 걱정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기숙사 건축을 위해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은 안정적인 채권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비싼 민자기숙사 비용을 내는 학생들의 희생을 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운영을 맡은 SPC는 기숙사 운영도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한정된 운영기간 동안 최대한의 수익을 내려 하고, 이 부담을 입사생이 떠안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고려대 총학생회의 정보공개청구소송을 거쳐 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된 고려대 민자 기숙사 정보를 보면, 기숙사비의 약 80%는 기숙사 건립을 위한 대출금과 이자 상환 등에 쓰였다. 조현준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은 “기숙사 수익구조 공개를 요청해도 여전히 많은 대학은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며 “기숙사 수용률이 워낙 낮다 보니 학생들은 비싸더라도 기숙사에 들어갈 수 밖에 없어 배짱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이래저래 피해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권예하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대학마다 갈등의 원인은 달라도 비용이 저렴한 기숙사를 늘리기 위해서 학생들이 싸워야 하는 상황은 똑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기숙사 3만실 확충을 공약했지만 정책 추진을 위한 밑그림은 나오지 않았고, 지자체나 학교는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숙사는 학생을 모집해 운영하는 대학이 갖춰야 하는 필수 시설로 봐야 하지만 대학의 보유조건에 관한 기준이 없이 방치돼왔다”면서 “이대로 가면 대학생들의 주거부담이 커지고 가계에 그대로 전가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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